꼬리가 개를 흔들 때(Wag the dog)

by 시온

이 영어 속담을 처음 들었을 때의 묘한 불편함을 기억한다.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빗댄 표현이지만, 조직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기업 현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복잡한 정의를 제쳐두고 단순하게 말하면, 시장에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그 대가로 수익을 창출하는 조직이다. 이 핵심 미션을 수행하는 부서가 바로 마케팅과 영업, 즉 사업 부서다.


기업이라는 생명체에서 사업 부서는 심장과 같다. 심장이 멈추면 생명체는 죽는다. 사업 부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기업은 존속할 수 없다. 이는 논리적 추론이 아닌 실제 세상의 생존의 법칙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많은 기업에서 사업 부서는 조직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 부서, 인사권을 장악한 HR 부서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사업 부서 직원들은 늘 누군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눈치를 보며, 줄을 서야 한다.


기획 부서나 HR 부서가 강한 권한을 갖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만하다. 조직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기가 막힌 일은 따로 있다. 사업 부서를 지원해야 할 '완충 조직'들이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다.


홍보팀, 대외협력팀, 법무팀 같은 부서들을 생각해보자. 이들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외부 환경의 충격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고, 사업 부서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마치 유리잔을 택배로 보낼 때 유리잔을 둘러싸는 뽁뽁이처럼.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들의 미션이 바뀐다. '기업 보호'가 'CEO 보호'로 둔갑하고, CEO의 측근이 되어 조직 전체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 더 나아가 외부 공격자와 은밀히 손을 잡고, 마치 내부를 협박하듯 자신들의 존재감을 키워나간다. 이쯤 되면 꼬리가 개를 흔드는 수준을 넘어선다. 꼬리가 개의 목덜미를 조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이 이론에만 존재한다고? 발리의 명소 중 하나인 울루와뚜 절벽사원에 가보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조직 내 완충 부서의 배신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현실판 교과서다.


절벽 위 힌두 사원의 황홀한 석양을 감상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원숭이 한 마리가 조용히 다가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관광객의 안경이나 모자를 낚아채 달아난다. 당황한 관광객이 어쩔 줄 모르는 그 순간, 마치 구원자처럼 현지인이 나타난다. 과자를 들고 원숭이를 달래어 물건을 되찾아주고, 약간의 팁을 받는다.


처음에는 고마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이 든다. 혹시 이 현지인과 원숭이가 한 팀은 아닐까?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는 건 아닐까?


기업의 완충 조직도 마찬가지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해야 할 부서가, 실제로는 위기를 조장하고 해결사 노릇을 하며 내부 권력을 키우는 경우가 있다. CEO 곁을 지키며 자신들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존재 가치를 과장한다.


이런 왜곡 현상은 경영 품질이 낮은 기업일수록 더 자주, 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마치 조직 문화의 일부인 양, 당연한 시스템인 양 반복된다. 꼬리 역할을 해야 할 조직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본래 목적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모든 왜곡의 책임은 결국 리더에게 있다. 의도했든 방조했든, 조직의 최고 경영자가 이런 구조를 만들거나 허용한 결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 누가 누구를 평가해야 하는지, 조직에서 진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부서가 어디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첫째, 사업 부서가 지원 부서를 평가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여 매출과 이익을 발생시키는 사업 부서가 자신들을 지원하는 부서들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서비스를 받는 쪽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을 평가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째, 직급과 조직 위계에서 사업 부서를 상위에 배치해야 한다. 같은 차장이라도 사업 부서 차장이 지원 부서 차장보다 높은 위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명확히 하는 상징적 조치다.


셋째, CEO가 중심을 잡고 주도해야 하는 것으로, 문고리 조직이 CEO의 이름을 빌려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 CEO 직속 부서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부서를 함부로 대하거나, 업무상 필요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모든 부서는 궁극적으로 사업 부서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CEO가 ‘Wag the dog’ 문제 해결의 제 1 당사자이다.



고객은 기업이라는 생명체에 일용할 양식을 준다. 그러므로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부서가 바로 기업의 중심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조직이 스스로를 속이게 만드는 구조를 방치하게 된다.


꼬리는 균형을 잡기 위한 장치다. 몸통을 움직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아무리 중요한 지원 업무라도, 아무리 전문적인 완충 역할이라도, 그것이 주객을 전도시킬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조직이 끝까지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 "꼬리 없이도 살아가는 생명체는 있지만, 몸통 없이 살아가는 생명체는 없다."


사업 부서가 강건해야 기업이 산다. 이 당연한 이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조직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개는 개답게, 꼬리는 꼬리답게.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조직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관계라는 이름의 낭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