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의 법칙

by Cindy in Wonderland


고양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그들이 밤의 동물이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그들을 야행성이라 단정하지만 사실 그들은 황혼 또는 여명에 활동하는 박명박모성(Crepuscular) 동물이다.


인간은 늘 존재를 극단으로 나누려 한다. 낮이거나 밤이거나, 성공이거나 실패 거나, 사랑이거나 이별이거나. 분류하고, 이름 붙이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듯 고양이는 해 뜰 녘과 해 질 녘, 빛과 어둠이 겹쳐지는 경계의 시간에 가장 또렷하게 깨어난다. 경계는 언제나 강하다. 탄생도, 죽음도, 사랑도, 이별도 모두 어떤 사이에서 일어난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시간. 세상이 아직 방향을 정하지 않은 순간. 존재가 가장 맨몸이 되는 때. 그렇다. 고양이는 그 경계의 주인이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 비로소 모든 고양이들이 잠든 새벽 세 시, 나는 깨어 있다. 리노가 둥글게 몸을 말고 루나가 꿈속을 걷는 시간. 숨소리만 남고, 냉장고의 미세한 진동음조차 크게 들리는 적막. 그 고요 속에서 가끔 나는 혼자가 된다. 생각은 이상하게도 그 시간에 크게 자란다. 낮에는 단정하게 접혀 있던 질문들이 어둠 속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왜 자꾸 실패하는가.

나는 무엇을 증명하려 애쓰는가.

나는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


질문은 번식한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된다. 이윽고 머릿속에서 작은 빅뱅처럼 터진다.


새벽에는 설명이 사라진다. 설명이 사라진 자리에, 나는 조금 더 순수해진다. 아무도 나를 요구하지 않는 시간. 딸도, 아내도, 직장인도 아닌 그저 한 존재로 남는 시간. 하루 동안 미뤄두었던 날것에 가까운 존재와의 대면을 겨우 허락하는 일요일 새벽 세 시. 생각은 중력에서 벗어난 입자처럼 자유롭게 흩어진다.


나는 고요의 한가운데에서 질문한다. 빛이 오기 직전의 어둠은 생각보다 깊고, 솔직하다. 변명도, 핑계도 잘 통하지 않는다. 새벽은 나를 쉽게 속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이 시간이 두렵지 않다. 138억 년의 우주가 여전히 팽창 중이라는 사실처럼 나의 질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폭발하지만 집은 조용하고 고양이들은 평온하다.

이윽고 아주 천천히 창밖이 푸르게 옅어진다. 여명이 오기 전, 가장 짙었던 어둠이 서서히 물러난다.


리노가 몸을 뒤척이고, 루나가 하품을 하며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고양이들은 경계의 시간에 깨어난다. 그렇게 우리의 아침이 질문 위에서 시작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일요일 새벽 세 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시간.


그 시간마다 나는 조금씩 금이 간다. 파괴는 끝이 아니라 경계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오늘도 완성되지 않은 채로 새벽이란 알에서 깨어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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