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들에게 편지 쓰는 집사가 되기로 했다.
이건 리노, 루나, 룬의 우주를 유영하는 엄마의 기록.
답장은 앞으로도 오지 않겠지만, 따뜻한 눈 맞춤 한 번이면 충분해.
그거 알아? 너희의 눈 속에는 끝없는 은하수가 떠있어.
그 은하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하루의 소란은 저 멀리 밀려나고 마음속에 작은 불 하나가 켜진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너희의 우주에 발을 들인 건. 그 잔잔한 빛이 나를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나의 마음은 점점 너희 쪽으로 기울고 또 기울었다.
처음엔 그저 귀여워서였다. 작은 발바닥, 무심한 하품, 아무 이유 없이 내 곁에 와 앉는 몸짓들. 그 사소한 순간들을 붙잡아두고 싶었다. 흘러가버릴까 봐, 언젠가 기억이 흐려질까 봐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리고, 짧은 글을 썼다. 처음엔 기록이었고 그다음엔 습관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도와도 같은 시간이 되었다.
답장이 오지 않을 편지를 부치던 무수한 일요일 오후 세시들.
커피가 식어가고 창밖의 빛이 조금씩 기울어가는 시간, 나는 어김없이 너희에게 말을 건넸다.
"리노야 밥을 가리지 않고 먹으면 더 귀여운 고양이가 될 것 같아."
"루나야 새로 바꾼 화장실 모래가 마음에 들어?"
"룬 어떻게 발톱 깎을 때도 엄마 사랑해 할 수 있어?"
너희는 너희의 방식으로 대답한다. 엄마의 말을 모두 알아듣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내 손등에 코를 대고, 때로는 야옹 소리로 재잘거린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띄워 보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늘 답장을 기다렸다. 편지를 주면 편지가 돌아와야 하고, 선물을 건네면 같은 무게의 선물이 돌아와야 마음이 놓였다. 괜히 공평하지 않으면 서운했고, 답이 늦어지면 괜히 내가 덜 사랑받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땐 마음도 주고받는 계산 같아서,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런데 너희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먼저 더 많이 준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답장이 없어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늦었지만 너희에겐 주저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이 기록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에 대한 이야기다. 너희를 온 맘 다해 사랑하다 보니, 나를 조금 더 아껴주고 싶어졌다.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었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은 다정해지고 싶었다.
함께 있으면 가끔 우주를 떠다니는 기분이다.
조용한 숨소리 셋이 모이면 은하 하나쯤은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 거창한 별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서로의 밤을 밝혀주는 사소한 가로등 불빛이라도, 너희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그저 괜찮다. 너희의 흐린 날에는 나도 그저 더 환히 빛나고 조금 더 오래 켜져 있는 그런 불빛이고 싶다.
일요일 오후 세시, 나는 오늘도 너희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새벽의 끝자락에서 나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