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예찬

by Cindy in Wonderland


얼마나 숱한 문인들이 고양이에게서 자유를 향한 열망을 발견하고 이 작은 동물과 자신을 하나로 여겼던가? 고양이는 문학의 단골 주제이고 예술가에게 주제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다.


샤를 보들레르는 고양이를 “아름답고 강하고도 부드러운 존재”라 노래하며 그 눈동자에서 신비와 관능을 보았다. 코렛은 인간보다 고양이를 더 깊이 이해한다고 말하며, 그 독립적인 영혼을 사랑했다. 헤르만 헤세는 고양이의 고독과 자존 속에서 예술가의 운명을 읽어냈다. 고양이는 늘 누군가의 은유였고, 자유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균형을 말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고. 그러나 나는 아직 고양이에게서 단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발견할 필요를 느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존재는 왜 이렇게 동그란가. 왜 하품은 그렇게 과장되고, 왜 발바닥은 푹신푹신하며, 왜 갑자기 전속력으로 거실을 질주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멈춰 서서 돌아보는가. 도대체 왜 이렇게 귀여운가.


리노의 옆모습은 지나치게 성실하고, 루나의 꼬리는 필요 이상으로 부드럽다. 룬의 골골 소리는 너무 과하게 사랑스럽다.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진동이 나오는지 우주의 팽창보다 더 신기하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신은 고양이를 만들고 나서 꽤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완벽하게 무심하고 필요 이상으로 아름답고 의외로 다정한 존재.


리노는 애교를 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허락처럼 다가온다. 그 순간 세상에서 선택받은 기분이 든다. 이건 불공평하다. 왜 너를 이렇게 좋아하게 만드는지 설명해주지도 않으면서. 리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낸다. 효율적이지 않다. 생산성도 없다. 성과도 없다. 그런데도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이게 내가 질투하는 지점이다.


루나는 이름을 불러도, 문이 닫히는 소리에도, 세상의 소란에도 반응이 없다. 처음엔 세상의 소리를 덜 듣는다는 것이 결핍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루나는 덜 듣는 대신 더 깊이 본다. 창밖의 빛을 오래 따라가고, 내 표정을 오래 읽는다. 소리 대신 진동으로, 말 대신 숨결로 세상을 감각한다. 어쩌면 들리지 않음은 부족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충만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소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존재. 들리지 않기 때문에 더 루나답다.


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두 발로 다 표현 안 되는 마음을 통통 형아 꼬리에 실어 보내고 세상이 온통 궁금해 고개를 갸웃 거린다. 총총총 온 우주를 누비는 룬의 발자국 위에 우리의 세상은 더없이 따뜻하다. 이토록 온전한 하루를 사는 생명체라니.


인간은 늘 무언가를 해내야 가치가 생긴다. 성과가 있어야 하고, 증명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는 왠지 모르게 빚을 진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이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고양이는 아무것도 해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창틀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졸아도 되고, 이유 없이 거실을 한 바퀴 질주하다가 다시 멈춰도 된다. 그들은 계획도 없고 목표도 없지만, 그저 괜찮다.


고양이를 찬양한다는 건 단지 그들의 귀여움을 말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존재는 증명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고양이를 찬양한다는 건 어쩌면 존재만으로 충분한 세계를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귀여워서다. 앞발을 모으고 자는 자세도, 갑자기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드는 스트레칭도, 물 마시고 나서 괜히 나를 쳐다보는 표정도. 나는 이 작은 움직임들에 쉽게 감동한다. 우주는 거대하고 철학은 깊고 존재는 복잡하다. 하지만 고양이는 귀엽다. 따뜻하다. 부드럽다. 가끔 까칠하다. 그리고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리노가 물을 마실 때에는 살금살금 걷고 루나의 꾹꾹이에 다리에 쥐가 나도 참고 내어주며 복숭아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룬을 위해 아껴둔다.


철학은 확장하지만 고양이는 수렴한다. 생각은 멀리 날아가지만 손을 뻗으면 닿는 체온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양이를 찬양한다. 그들이 있어 날씨는 창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