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자는 고양이를 보면 시간이 느슨해지고 존재가 설명 없이 성립하고 우주가 열린다. 이 작은 존재를 이루는 물질이 언젠가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저 작은 몸이 이토록 완결된 세계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리노는 창틀에 앉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충실히 존재하고 있다. 꼬리는 천천히 흔들리고, 귀는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듣고, 눈동자는 빛을 받아 반짝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묻는다. 존재란 무엇일까.
인문학은 늘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느끼는가. 왜 사랑하고 왜 불안해하는가.
처음에는 감정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정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는 시간이 있고, 시간 아래에는 몸이 있고, 몸 아래에는 물질이 있다. 리노의 몸을 이루는 털 한 올, 발톱, 눈동자. 그것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의 몸을 이루는 탄소는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별이 폭발하며 흩뿌린 원소들이 모여 지구가 되었고 그 지구 위에서 생명이 태어났다. 그러니까 지금 내 무릎 위에서 골골 소리를 내는 이 작은 고양이는 한때 별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세상은 갑자기 넓어진다.
나는 왜 불안한가라는 질문은 나는 왜 유한한가로 바뀌고 나는 왜 죽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왜 지금 잠시 존재하는가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시간과 공간이 있다.
우주는 138억 년의 시간을 품고 있고 나는 그중 몇십 년을 잠깐 스쳐 지나간다. 그 사실은 나를 작게 만들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안심시킨다. 내 실패가 그렇게 대단한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놓친 기회 하나가 우주의 균형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는 사실.
고양이는 그걸 이미 알고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리노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루나는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햇살과 지금의 체온 속에서 완결된다.
인문학은 인간의 의미를 묻는다. 우주과학은 존재의 구조를 설명한다. 하지만 둘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의미는 구조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면 후회도 없고
공간이 없다면 관계도 없고
중력이 없다면 포옹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를 오래 바라본다.
이 작은 존재 안에 시간과 물질과 우주와 질문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려고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를 이해하려고 철학을 공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을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나는 골골 소리. 그 소리는 별의 잔해가 내는 소리다. 우주가 아주 작은 몸을 빌려 내는 숨소리.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나는 잠시 여기에서, 이 작은 별의 잔해들과 함께 존재한다. 우주의 무한한 시간 앞에서 내가 쥔 이 작은 몇십 년은 그저 잠시 빌린 빛이다. 그 빛을 나의 별들과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