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맞지 않는 퍼즐 조각

by 꿀꾀배기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나는 틈만 나면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맸다. 일자리를 구하러 나선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은 홀린 사람처럼, 거리 어딘가 남겨졌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흔적만을 애타게 찾아다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허탈함뿐이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일하러 갔어야 할 시간에 의미 없는 걸음을 반복한 탓에,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주머니가 비어갈수록,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갈망만이 더욱 깊어졌다. 이제 와서 공장 잡일 거리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G의 방문 이후 자괴감에 빠져 있던 나는 어김없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디바이스를 열어 확인한 잔고는 바닥. 다음 보급 신청은 어림도 없었다. 달랑 남은 건 에너지바 한 박스. 주사 덕분에 죽지 않게 되었을 뿐, 몸이 스스로 영양소를 만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세포 생성을 위해선 여전히 무언가를 먹어야 했다. 하루 권장량을 충족하려면 최소 두 개의 에너지바가 필요했다. 게다가 주거비 문제도 있었다. 내일부터는 반드시 일을 구해야만 했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걱정들을 접어두고, 옷장을 열었다. 몇 벌 없는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바닥엔 남색 노동복이 허물처럼 구겨져 있었다. J라고 적힌 이름표가 달린 그 옷은, 이제는 남의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후줄근한 노동복 대신, 등 뒤에 노란 장미가 수놓인 검은색 후드와, 펑퍼짐한 점퍼를 걸쳤다. 옷감이 상할까 걱정스러워 좀처럼 입지 못하고 옷장에 모셔두던, 아끼는 옷이었다. 머리를 정리하고 차림새를 갖추자, 거울 속 모습이 그럭저럭 봐줄 만해 보였다. G의 앞에서 초라해 보였던 기억을 털어내기 위해, 마치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멋을 낸 나는 주저 없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습관처럼 공장 거리로 향했다. 정오를 조금 넘긴 12시 47분. 평소 같으면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일 시간이었지만, 거리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했다. 양옆으로 길게 들어선 공장에서 울리는 기계 소리만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노동자들이 북적이던 때에도 이곳엔 공장 부품처럼 힘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었다. 사람이 사라진 거리엔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멸망한 세상을 걷는 듯했다.

거의 모든 공정이 자동화가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지나치는 공장마다 노동자를 구하는 게시판이 텅 비어있었다. 아예 게시판을 철거한 곳도 있었다.


공장 노동자라는 직업을 부여받고, 하라는 대로 교육을 받아왔건만, 이젠 더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그럼 남은 자들은 어디로 향하라는 말인가. 공장들은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좌절에 빠진 노동자들이 결국 '섬'으로 떠날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차가운 기계들만 남아 이곳이 텅 빈 묘지처럼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세상이 멸망한 게 아니었구나. 멸망한 건, 우리의 작은 세상뿐이구나.



착잡한 심정으로 공장 거리를 계속 걸었다. 당장 앞으로의 생계를 해결할 방법조차 없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암울한 현실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어째서 우리의 인생은 날벌레처럼 가볍게 여겨지는 건지. ‘인생’이라는 단어가 과분하게 느껴졌다.

환영처럼 사라진 그녀를 막연히 찾아 헤맸던 건, 결국 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삭막한 공장 거리를 걸으며 나는 점차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래, 내 삶은 단 한 번도 특별한 적이 없었다. 오직 암울함만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매서운 바람 속에서 도망치듯 목적 없는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N을 만났다. 마치 벽난로 앞에 선 아이처럼, 처음으로 따뜻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길고 긴 겨울을 견딘 건, 이 안식을 만나기 위한 시간이었구나,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았다. N은 떠났고, 나는 다시 차가운 바닥 위에 버려졌다. 온몸으로 따뜻함을 기억한 뒤에 마주한 추위는,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리게 다가왔다.

더는 밀릴 틈도 없이 벼랑 끝까지 내몰린 내게, 작은 살인자와 함께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었기에 오히려 엄청난 파장을 남겼다. 스스로를 향해 비난을 퍼붓던 지난날이 무색하게도, 우습게도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특별하고 비현실적인 일들이 내게 일어날 것이고, 그 끝에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를 숨기지 못했다.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던 ‘이상’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만 같아 부풀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G와의 만남, 그리고 이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또렷이 일깨워 주었다. 잠시 신기루에 홀렸던 걸까? 혹시, 그 모든 것이 진짜 꿈이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파도처럼 밀려오자, 불현듯 깊은 불안에 사로잡혔다. 온몸에 오한이 이는 듯했고,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거리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선 채, 괴로움 속에 발을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아, 항상 이런 식이다.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도 모르는 근거 없는 기대. 나만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일을 겪게 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환상. 한 조각을 남기고 완성을 앞둔 퍼즐은 언제나 빈 공간이 나라는 조각과는 맞물리지 않았고, 그 현실 앞에서 마주한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지...



자학의 굴레에 빠져버렸고, 탈진이라도 하지 않는 한 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다. 귀에는 가시처럼 날카로운 말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도무지 저항할 수가 없었다. 속삭임은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어 정신을 갉아먹었고, 스스로를 놓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그 순간, 누군가 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려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J, 아직 여기 있었군!” 귀에 익은 걸걸한 목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소리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나오던 U였다.

U는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으로, 한때 공장의 관리 감독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호쾌하면서도 따뜻한 성격 덕에 사람들과 잘 지냈고, 감독직이 가장 먼저 안드로이드로 대체되며 일반 노동자로 전환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무기력에 빠진 사람도 아니었다.

항상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U가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는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예전보다 조금 마른 모습이었다. U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한동안 안 보이길래 자네도 섬으로 떠난 줄 알았지. 평소의 자네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나버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오히려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니!”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팍팍 쳤다. 쓴웃음이 바람 빠지듯 터져 나왔다. U의 큼직한 손이 어깨에 닿을 때마다 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 덕에 방금 전까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정신이 조금씩 현실로 돌아왔다.

“하하! 여하튼, 이렇게 누굴 만나니 반갑군. 오후에 작업 넣어놓은 거 있나?”

“아뇨, 아직…”

먼지가 잔뜩 묻은 어깨를 툭툭 털며 대답했다. U는 멋쩍게 웃으며 수건으로 자기 손을 문질렀다.

“어차피 돌아다녀 봐야 일자리 찾기도 힘들 텐데, 차라리 같이 ‘미스터나인’에 가는 거 어때? 내가 한턱내지.”

미스터나인은 공장 거리 근처에 위치한 음식점이었다. 흔한 대체 식품들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노동자들의 단골 식당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생존을 위한 섭취가 아닌 '만족'을 위한 식사를 할 수 있어 나 역시 종종 찾던 곳이었다. 오랜만에 미스터나인을 떠올리자 군침이 돌았다. 마침 공복이었고, U가 사겠다고 하니 금전적인 걱정도 덜 수 있었다.

“네, 좋아요.”

내가 말했다. U는 내가 언제나처럼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아! 간만에 사람하고 말 좀 섞어 보겠군. 어서 가자고.”

U는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웃다가,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우린 미스터나인으로 향하며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을 나누었다. 어색하게 웃거나 짧은 대답을 건네는 게 전부였지만, 무언가 오래 잊고 지냈던 따뜻한 감정이 낯선 온기가 되어 서서히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그 어색함을 어디 둘 데 없던 나는 괜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U는 ‘OPEN’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린, 원목과 유리창으로 엔티크하게 꾸며진 미스터나인의 문을 열었다. 난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식당은 텅 비어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노동자들로 북적였을 미스터나인의 풍경을 떠올리자, 가슴 한편이 괜히 쓰라렸다. 식당의 주인 ‘미스터 나인’은 그럼에도 여느 때처럼 깔끔한 외관을 유지한 채, 부엌 저편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 손님 한 명 없는 내부를 본 U는 순간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인, 나 왔네. 그간 잘 지냈어?”

미스터 나인은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U, 이게 얼마만이야! J도 같이 왔네. 편한 데 앉아.”

우린 부엌 앞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목재 가구와 주황빛을 머금은 어두운 조명이 식당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마 전쟁 전의 물건들일 것이다. 오래된 것들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 미스터 나인은 잔을 내려놓고 바 앞으로 다가왔다. 여유로운 그의 동작엔 신뢰를 주는 묘한 안정감이 배어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군. 저번 주부터는 파리만 날려서, 장사 접어야 하나 고민했거든.” 그가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나도 오늘 J를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사람 수가 준 것도 있지만, 요즘은 거리가 흉흉해서 남아 있는 이들도 좀처럼 밖에 나오지를 않으니...” U가 메뉴판을 훑어보며 말했다. 미스터 나인이 부엌 쪽 바 위에 팔꿈치를 올렸다.

“며칠 전엔 경찰차가 거리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던데, 뭔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 와중에 매일같이 찾아오던 자네가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했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U는 잠시 메뉴판을 바라보다가, 내게 그것을 넘겼다.

“... 오늘 하루가 길지 않나. 천천히 얘기하지. 난 ‘풀고기 통구이’에 맥주 한 잔.”

“전 ‘풀고기 다리 튀김’으로 주세요.” 메뉴판을 건네며 내가 말했다.

“마실 건 필요 없고?” 미스터 나인이 그것을 넘겨받으며 물었다.

“아, 저도 맥주로요.”

그는 조용히 웃으며 부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 슬며시 U를 바라보았다. 조명에 반쯤 가려진 얼굴은 이전보다 확실히 수척해 보였고, 특유의 호탕함은 여전했으나 표정 어딘가에 괴로움이 묻어 있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미스터 나인 역시 진작에 그것을 눈치채고, 방금 전 말을 꺼냈던 거겠지.

그러나 U에 대한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요즘 거리가 흉흉하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며, '그녀', 살인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그녀가 시신을 정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토막 나고 난도질당한 시체 조각들이 거리 한복판에 그대로 흩뿌려져 있다는 뜻 아닌가?

곧바로 형 T가 떠올랐다. 매일 순찰을 도는 경찰들이 그 현장을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만약 내가 사는 구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T가 알았다면, T는 분명 곧장 연락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T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가정을 하는 사이, U 역시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식당 안은 조용했고, 부엌에서는 미스터 나인이 요리를 준비하는 소리만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달그락. 치이익─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시체, 경찰, 살인자, 그리고 T. 하지만 그것들은 서로 명확한 연결고리를 맺지 못한 채 제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경찰이 아직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T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시체가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생각의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부유했지만, 하나로 맞춰지는 법은 없었다. 무엇 하나 서로 맞물리지 않았고,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들려오는 소음들은 점점 멀어지고, 나는 그 불길한 퍼즐을 맞추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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