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의 대리인

by 꿀꾀배기


"행복하고 평등한 세상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갑니다."


활기찬 음악이 흘렀다.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도, 햇살 아래 도로를 정비하는 사람도,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사람도 모두 웃고 있었다. 그들은 한데 모여 손을 맞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피부색도, 언어도, 옷차림도 달랐지만 그들은 다채롭고 조화로웠다.


나는 공장 휴게실 TV에서 흘러나오는 그 영상에 시선이 고정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에 쥔 에너지바가 축 늘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처럼 에너지바를 씹고 있었다. 오래된 환풍구가 먼지를 들이마시며 콜록거렸다. TV에서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목이 메었다. 무의식적으로 수분 캡슐을 뜯어 입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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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 주변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하나씩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먼지처럼 작은 눈이 옅게 흩날리는 골목 한가운데 서 있는 나. 주위로 널브러진 세 명의 덩치들. 잔뜩 커진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넋이 나간 노동자 여성. 그리고 눈앞에, 웃고 있는 작은 살인자. 그녀가 걸친 검은색 큼직한 무스탕이 컴컴한 밤거리에서도 반들거렸다.


연갈색 양털 안감이 드러난 소매 아래, 하얗고 작은 손이 주사기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주사기 바늘 끝에서 투명한 내용물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의 고요함은 귀를 파고드는 중년 여성 노동자의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녀는 거의 한 바퀴 비틀린 두 팔을 덜렁거리며 울부짖다가, 별안간 작은 살인자에게 홱 눈을 돌렸다. 핏기 없이 거무죽죽한 얇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사람들, 죽은 건 아니지?! 응? 그렇지?”


황홀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던 작은 살인자는 눈썹을 살짝 위로 올리고, 눈동자만 돌려 쓰러져있는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이어서 고개도 그녀에게 돌렸다. 그녀는 노동자 여성을 잠시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지나간 바닥에 부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것은 아까 발견했던 발자국과 같은 것이었다. 살인자는 노동자 여성의 앞에 멈추더니, 그대로 쭈그려 앉았다.


“나, 저 사람들이랑 같이 가야 해. 얼마를 받기로 했는지 알기나 해? 저 사람들, 잠깐 기절한 거지? 다시 일어나는 거지...?”


노동자 여성이 흐느끼듯이 말했다. 살인자는 가만히 그녀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왼손을 옷 주머니에 넣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건을 꺼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연분홍빛 금속, 장미꽃처럼 소용돌이치는 곡선들, 그 위로 얹히듯 솟은 작은 분수대. 나는 그 모티브가 되는 작품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정원.


탐욕과 환상이 서로의 혀를 깨물며 비틀리던 그 그림 속, 화면 한가운데 박힌 분홍색 분수대. 그것이 그녀의 손안에 있었다. 분수대의 중앙에는 작은 올빼미 하나가 조각되어 있었다. 밤을 사는 자. 진실을 꿰뚫는 자. 혹은, 욕망을 속삭이는 사탄. 그녀는 분수대 꼭대기에 달린 뚜껑을 엄지로 밀었다. 딸깍, 뚜껑이 열렸다. 그녀는 그것을 입에 물었다. 날숨과 함께 불투명한 연기를 내뿜었다. 그 연기가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손목을 살짝 흔들자, 다시 딸깍, 뚜껑이 닫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조금 풀어진 눈으로, 생글생글 웃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리본을 풀고 선물을 열어젖힌 아이처럼.


“이 쪽은 주사도 필요 없겠네.”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내뱉은 그녀의 낮은 톤의 목소리는, 노동자 여성의 고조된 외침과 아직도 가쁘게 뛰는 내 심장 사이에서 어수선하게 흩어진 공기를 순식간에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혔다. 침을 꿀꺽 삼켰다.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나는 찡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바람이 잦아들고, 눈을 끔뻑이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다 눈 위에 툭 떨어져, 힘없이 굴렀다. 굴러간 바닥엔 자국도 거의 남지 않았다.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의심한 적도 없는, 우리의 비참한 말로. 생명이 정말 평등하다면, 왜 어떤 건 이렇게 조용히, 이렇게 초라하게 끝나는 걸까.


바닥에 떨어진 여자의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작은 살인자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녀는 단지, 저울질 끝에 생명의 무게가 가볍다고 판단된 자들만을 고르는 비겁한 살인자에 불과한 걸까? 그녀의 살인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까?




그녀는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은은히 미소 지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여성의 몸과, 그 옆에 굴러 떨어진 작은 머리를 뒤로 한 채, 쓰러진 세 남자의 육체를 향해 여유롭게 걸어갔다. 딸깍.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연기가 그녀의 머리 위로 흘러나왔다. 다시 딸깍. 흡연 기구를 주머니에 넣은 그녀는 안주머니에서 동그랗게 말린 와이어를 꺼내 들었다. 와이어를 손끝으로 가볍게 흔들더니, 세 남자의 팔을 위로 모아 하나하나 묶기 시작했다.


콧노래가 들려왔다. 그녀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처럼, 무구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사회가 부여한 질서와 도덕, 책임과 죄책감, 그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인간. 오직 자신의 욕망과 판단만으로 움직이는 존재. 거기에는 단 한 톨의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불현듯 깨달았다. 이미 생명의 무게추가 기울어진 지 오래인 이 세계에서, 도덕과 윤리는 오히려 약자를 옭아매는 족쇄나 다름없었다. 규칙은 강자에 의해 정해지니, 가난하게 태어난 자는 가난하게 죽고, 부유한 자는 영원히 부유하게 산다. 착취는 끝없이 이어지고, 생존을 담보로 한 침묵이 요구된다. 애초에 이 세상은, 단 한 번도 평등했던 적이 없다.


그런 세상에서 작은 살인자는, 그 틀 밖으로 나온 유일한 존재처럼 보였다. 세상이 정한 선도, 글로 짜인 경계의 그물도 그녀를 붙잡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자유로웠고, 자유로운 만큼 아름다웠다.


혹시 그녀는, 불균형하고 오염된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 나타난 존재가 아닐까? 배부른 자든, 굶주린 자든, 모두 같은 무게로 단죄하는, 신이 내린 평등의 심판자가 아닐까? 그녀는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순수한 욕망이 비추는 길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 모습에서 이상을 보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벽을 뚫고 나올 듯 뛰고, 거센 감정이 온몸을 뚫고 전류처럼 솟구쳤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 앞에 서 있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신이 내게 막중한 과업을 내린 것이다. 나는 그녀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도록,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 자신을 전부 바쳐서라도, 이 세상이 바뀌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녀로 하여금 오염된 세상이 정화될 수 있도록. 그녀가 끝없이 갈증을 느끼고,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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