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본 연재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작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주말, 신도시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은 장사진을 이룬다. 당첨만 되면 '로또'라는 소문에 빚을 내서라도 청약을 넣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한 커피 향과 클래식 음악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내원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견본주택 내부는 그야말로 꿈의 궁전이다.
거실 바닥에는 이탈리아산 대리석이 깔려 있고, 주방에는 독일제 오븐이 빌트인 되어 있다. 서재에는 가죽 장정의 책들이 꽂혀 있고(물론 펴보면 속이 빈 가짜 책이다), 침실 조명은 호텔 스위트룸처럼 아늑하다.
상담사는 우아한 미소로 속삭인다.
"이곳은 단순한 집이 아닙니다. 고객님의 품격입니다. 프리미엄 라이프를 누리세요."
사람들은 그 화려한 '껍데기'에 홀려 수억 원짜리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모델하우스가 보여주는 환상이 곧 내 현실이 될 거라 믿으며, 평생 갚아야 할 대출 이자를 기꺼이 감수한다.
하지만 입주가 시작되고 마주한 '진짜 현장'은 모델하우스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다. 호러 무비다.
비가 내리는 날, 지하 주차장 천장에서는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진다. 벽지 뒤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바닥 수평이 맞지 않아 구슬을 놓으면 데굴데굴 굴러간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벽 속에 숨겨져 있었다.
전문가들이 점검해 보니, 기둥을 지탱해야 할 철근이 절반이나 빠져 있다. 소위 '순살 아파트'. 뼈대 없이 살만 붙여놓은 위태로운 모래성이다.
건설사는 원가 절감을 위해 철근을 빼돌렸다. 그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모델하우스에 연예인을 불러 팬사인회를 하고, 화려한 전단지를 찍어내고, 상담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줬다. 즉, '가짜(홍보)'를 치장하는 데 돈을 쏟아붓느라 정작 '진짜(안전)'를 지킬 돈은 횡령한 것이다.
입주민들이 항의하자 시공사 직원은 말한다.
"구조상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안전 진단 다시 해드릴게요."
그 뻔뻔한 얼굴 뒤로 모델하우스에서 봤던 그 우아한 상담사의 미소는 온데간데없다.
우리가 산 것은 '품격'이 아니었다. 우리는 화려한 포장지에 싸인 '시한폭탄'을 샀다.
모델하우스의 대리석 바닥은 반짝거렸지만,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진짜 아파트의 바닥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포로 흔들리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진 이 콘크리트 덩어리는,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보여지는 것에만 목숨 걸고, 보이지 않는 본질은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그 천박한 가치관이 낳은 괴물.
오늘도 모델하우스 앞에는 줄이 길다. 그들은 아직 모른다. 자신들이 계약하는 것이 안락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뼈 없는 순살 치킨 같은 집이라는 사실을.
"화려한 포장지보다 보이지 않는 뼈대가 더 튼튼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