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대리석 바닥의 모델하우스와 뼈 없는 아파트

1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by Napolia
​"본 연재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작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04. 대리석 바닥의 모델하우스와 뼈 없는 아파트

​주말, 신도시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은 장사진을 이룬다. 당첨만 되면 '로또'라는 소문에 빚을 내서라도 청약을 넣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한 커피 향과 클래식 음악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내원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견본주택 내부는 그야말로 꿈의 궁전이다.

​거실 바닥에는 이탈리아산 대리석이 깔려 있고, 주방에는 독일제 오븐이 빌트인 되어 있다. 서재에는 가죽 장정의 책들이 꽂혀 있고(물론 펴보면 속이 빈 가짜 책이다), 침실 조명은 호텔 스위트룸처럼 아늑하다.

​상담사는 우아한 미소로 속삭인다.
"이곳은 단순한 집이 아닙니다. 고객님의 품격입니다. 프리미엄 라이프를 누리세요."

​사람들은 그 화려한 '껍데기'에 홀려 수억 원짜리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모델하우스가 보여주는 환상이 곧 내 현실이 될 거라 믿으며, 평생 갚아야 할 대출 이자를 기꺼이 감수한다.

​하지만 입주가 시작되고 마주한 '진짜 현장'은 모델하우스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다. 호러 무비다.

​비가 내리는 날, 지하 주차장 천장에서는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진다. 벽지 뒤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바닥 수평이 맞지 않아 구슬을 놓으면 데굴데굴 굴러간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벽 속에 숨겨져 있었다.

전문가들이 점검해 보니, 기둥을 지탱해야 할 철근이 절반이나 빠져 있다. 소위 '순살 아파트'. 뼈대 없이 살만 붙여놓은 위태로운 모래성이다.

​건설사는 원가 절감을 위해 철근을 빼돌렸다. 그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모델하우스에 연예인을 불러 팬사인회를 하고, 화려한 전단지를 찍어내고, 상담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줬다. 즉, '가짜(홍보)'를 치장하는 데 돈을 쏟아붓느라 정작 '진짜(안전)'를 지킬 돈은 횡령한 것이다.

​입주민들이 항의하자 시공사 직원은 말한다.
"구조상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안전 진단 다시 해드릴게요."
그 뻔뻔한 얼굴 뒤로 모델하우스에서 봤던 그 우아한 상담사의 미소는 온데간데없다.

​우리가 산 것은 '품격'이 아니었다. 우리는 화려한 포장지에 싸인 '시한폭탄'을 샀다.
모델하우스의 대리석 바닥은 반짝거렸지만,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진짜 아파트의 바닥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포로 흔들리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진 이 콘크리트 덩어리는,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보여지는 것에만 목숨 걸고, 보이지 않는 본질은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그 천박한 가치관이 낳은 괴물.

​오늘도 모델하우스 앞에는 줄이 길다. 그들은 아직 모른다. 자신들이 계약하는 것이 안락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뼈 없는 순살 치킨 같은 집이라는 사실을.





​[작가의 한마디]

"화려한 포장지보다 보이지 않는 뼈대가 더 튼튼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