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

by 한밤

불행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바로 곁에서, 익숙하고 가까운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특히 가장 뼈아픈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우리를 안심시킨다.

가족이니까 괜찮고, 가족이라서 편하고, 가족이니 당연하다는 믿음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성인이 되어 내가 선택한 사람과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나면 그 믿음은 더욱 굳건해진다.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남에게는 하지 않을 말을 서슴없이 던지면서도 ‘가족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쉽게 퉁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세운 무조건적인 기대와 의지는 서로를 자주 섭섭하게 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낳는다. ‘가족인데 뭐 어때?’ 하던 마음이 돌아서면 ‘가족이 어떻게 그래?’로 변하고 ‘가족은 도와야지.’ ‘가족은 이러면 안 돼.’ 같은 말들은 가족에게 더 엄격한 잣대와 의무를 들이대며 결국 무거워진 부채만큼 원망도 커지게 만든다.

나는 이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때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믿었던 배우자에게 의미를 크게 둘수록 ‘믿는 도끼’의 날도 커진다. 내 발등도 찍히고 나서야 큰 아픔을 제대로 실감했다.

그렇다고 가족을 남처럼 대하고 의심만 하며 삭막하게 살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내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한때는 ‘가족’이 내 전부였다. 전업맘이었기에 아이의 성적이 나의 자존심이 되었고, 배우자의 기분이 내 하루의 감정을 좌지우지했다. 그 ‘전부’가 깨어지자 나라는 존재까지 함께 사라진 듯한 공허함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가족 외의 또 다른 기둥을 세워두었다면 그렇게까지 깊은 나락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삶과 감정을 좀 더 일찍 주체적으로 살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독립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바깥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일, 그리고 가족과 공유되지 않는 나만의 세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가족이 흔들리고 해체되었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갇혀 나 자신을 안달복달 소진하는 일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아이는 분명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이지만 언젠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늘어지고 싶진 않다. 그 말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불행의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족을 더 건강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잃지 않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누군가의 아내이기 전에, 누군가의 엄마 혹은 딸이기 전에 나는 하나의 고유한 세계를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전업주부라면 더욱 나를 숨 쉬게 하는 일들, 내 기둥이 되어줄 작은 세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나도 가족도 서로의 삶을 짓누르지 않고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무너지지 않는 가족은 서로를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제대로 서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결국 가족은 소중하지만,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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