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더라도 끝까지

by 한밤

애석하게도 불행은 돌직구로 날아든다.

그렇게 불행에 정통으로 들이 받히고 나면 이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아 죽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그저 얼얼하기만 하다.

무엇에,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사태를 파악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임을 깨닫게 되면 곡기를 끊게 된다.

먹고 싶지도, 먹히지도 않는다.

숨은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고통스러운 상황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도무지 아픈 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그럼 신이 없다는 결론을 섣불리 내린다.

다른 사람에게는 있어도 나에게는 없다고.

나는 매일 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심정으로 자고 일어나면 생을 하루 앞둔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있길 간절히 바랐다.

아니, 그저 평온하게 영원히 깨지 않길 얼마나 빌고 또 빌었던가.

그만큼 생에 대한 미련도, 살고 싶은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그 시절, 사람들이 나를 위로한다며 건넨 말들 중

“운동을 해봐.” “밖에 나가봐.” “일을 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런 말들이 가장 잔인하게 들렸다.

나도 정답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나 역시 조바심이 났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과 여건이 쉽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도 눈물이 나던 사람이었다.

말보다 눈물이 앞서던 시기였다.

밖에 나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려 고개를 숙여야 했다. 서로 형편을 알 길 없으니 민망해지기만 했다.

그만큼 운동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고 싶어도, 외출을 나가고 싶어도 그냥 모든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눈물은 나에게 철철 흘리는 피와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피가 보이지 않는 듯 굴었다.

불행에 신음하는 사람과 함께 울어줄 수 없는 거라면 때론 침묵이 더 나은 위로일 수도 있다.


그때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했다.

지켜야 할 ‘아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아이 인생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합리화까지 하면서.

주체할 수 없이 고통에 찌든 날이면 새벽에 뛰쳐나가 까만 밤을 헤맸다.

평소라면 범죄가 무서워 밤에는 나가지도 않는 겁보였는데 그땐 무서움이란 것도 사라져 위험 속에 뛰어드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건지, 건물 옥상문은 잠가놓으라는 안전법이 생긴 건지 매번 열리지 않는 문을 만지작대다 내려왔다.

신식 건물은 비밀번호를 누르게 되어 있었는데 잘못 눌렀다가 경고등이 울릴까 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어제 새벽에 어디 갔었어?”

나는 당황해 짧게 대답했다. “어, 산책…”

그 순간, 돌직구보다 더 크게 얻어맞은 듯 아팠다.

아이가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

내가 돌아오기까지 그 아이가 겪었을 무서움이,

나는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매일 밤 울기 바빴는데

이 아이도 같은 불행 속에서 몰래 그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은 산책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의 눈과 마음이,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눈물이 걷히자 흐릿했던 생각도 또렷해졌다.

‘죽더라도…’로 시작하는 이유들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 당시 나를 가장 짓눌렀던 건 유책배우자가 집을 나가 생활비를 끊고,

오히려 먼저 이혼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흔한 수순이라지만 그때 나는 내가 오히려 ‘정신병자 의부증의 유책배우자’가 되어버린 현실이 죽는 것보다 더 억울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그래, 죽더라도 이 소송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보고 죽자.’

그런데 이혼소송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렇게 소송이 길어지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죽더라도 글을 써보자.’

‘죽더라도 아이를 지켜보자.’

그렇게 죽음을 미루는 사이 생은 아주 천천히 나를 삶으로 돌아오게 했다.


신은 있었다.

나에겐 열리지 않았던 문이, 매일 밤 응답되지 않았던 기도가, 내 아이의 물음이 신이었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당신의 신도 그렇게 당신 곁에서 당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우리 죽더라도… 끝까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면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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