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받으려다 잠시 주춤했다.
발신인은 매번 오전에만 시간이 된다고 해서 억지로 맞춰야 했던 지인이었다.
벨이 울리는 동안 그녀와 내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언성을 높인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의 말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은 내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다.
“왜 남편 말을 그렇게 믿었어?”
그 말은 난데없이 나에게 책임을 전가시켰고,
“그러게, 너도 바보 같았네.”
이 말은 나를 자책하게 했다.
“나는 남편이라도 사람 말은 무조건 반만 믿어, 그래야 안 당해.”
그녀는 어렵게 털어놓은 내 얘기에도 자신의 똑 부러짐만 어필했다.
내 얘기를 전혀 듣지 않은 사람 같았고, 무슨 말을 해도 자기주장만 반복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 자존감도 낮아 그녀의 말에 진실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녀 앞에서 웅얼거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귓전에 울리던 그녀의 말이 힘을 잃었을 때에야 그녀가 얼마나 무례했는지를 깨닫게 됐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상관없고 아득해질 정도로 선을 넘을 수 있다는 걸 그녀를 통해 배웠다.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음으로 내 마음을 표현했다.
벨은 한층 불길하게 울렸다.
받자마자 그녀는 변고처럼 다급하게 뱉었다.
“남편이 이혼하자는데… 나 어떡해야 돼?”
이어서 사고 현장을 수습하듯 횡설수설했다.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시에 지난날의 내 모습들이 조각조각 되살아났다.
“우선…”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어쩐지 그날 밤엔 서로 아쉬울 것 없이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됐던 날이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안타까웠다.
그녀는 가장 힘들고 막막할 때일 것이었다. 그러니 의지도 되지 않은 나에게라도 연락한 거겠지, 얼마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지 짐작하며 서운함은 뒤로한 채 내가 아는 대로, 내가 겪은 대로 말들을 쏟아냈다.
어쩌면 그날의 나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내가 겪은 일을 근거로 내 말이 옳다고 우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끝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에도 힘이 빠지진 않았다.
“근데 있잖아…. 네 남편이랑 내 남편은 달라.”
불행을 먼저 겪어본 사람은 관대해진다.
그래서 이해가 됐다.
이혼의 사유는 한 가지만이 아니고 같은 이유에도 결이 다르다.
그렇기에 같은 고통이라도 세세한 아픔으로 분류된다.
결혼 생활, 자녀유무, 재산 관계 등등 얽혀있는 것이 많을수록 더 복잡하게 나뉜다.
이해관계와 살아온 세월은 계산기를 두들기듯 단순한 셈법이 될 수 없다.
게다가 겉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결정은 결국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답답해하며 도대체 왜 당장 헤어지지 않는지 쉽게 욕하고 훤히 꿰뚫듯 이혼이 정답이라고 외쳐댈지 모르지만 닥친 사람은 그런 합리적인 판단을 신속하게 내릴 수 없다.
‘이혼’이란 시간이 지나 마음이 가라앉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마음을 단호히 먹어야만 내릴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는 충격이 가장 큰 시기일 테니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미 이혼을 말한 남편을 여전히 믿고 싶어 하는 그녀를 향해,
나는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남편과 화해하라고 조언하며 통화를 마쳤다.
우리는 그날 밤, 고통이 닮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같을 수 없고 아픈 순간을 함께 나누는 데도 한계가 있음을 더욱 또렷하게 깨달았다.
불행은 우리를 잠시 나란히 세웠을 뿐, 같은 방향으로 걷게 만들진 않았다.
아마 그녀가 이혼하지 않는 한, 우리는 또 한동안 연락 없이 지낼 것이다.
전화가 오지 않길 바란다.
어느 쪽이건 한밤중에 걸려오는 전화는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