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복수를 꿈꾸게 하고 억울함을 낳는다.
그 억울함은 인생이 얼마나 허무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면 지금의 나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착하게 사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상이 마치 악하게 사는 사람과 남을 속이며 사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때 마음이 크게 휘청인다.
‘나도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
그 길이 더 편하고, 덜 상처받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워 보이는 길도 막상 걸어보면 쉽지 않다.
더구나 자기 본성을 거스르는 선택은 비참해지는 지름길이 된다.
그러나 불행할 땐 그게 문제인지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심지어 복수에 눈이 멀어 매우 정당하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에는 직접 걸어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결말을 알 수 있어야 하는 길이 있다.
반드시 내 손을 더럽혀봐야만 깨닫는 삶은 어리석다.
지금까지 남의 뒤통수를 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온 삶은 그 자체로 이미 값지다.
그 가치를 스스로 지켜낼 줄 알아야 한다.
비틀린 길 대신 곧은길을 걸어온 시간은 어떤 값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다.
남을 속이며 살아온 사람들은 결국 그 방식만 고집하며 제대로 살길 거부한 이들이다.
그 끝은 절망과 대가의 도돌이표뿐이다.
그런 그들과 같아지려 한다면 그 복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그들과 같은 방법을 택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자기 훼손에 가깝다.
나를 지워가며 얻는 삶은 승리가 아니라 이미 패배의 다른 이름이다.
드라마 같은 복수는 현실에 없다.
그러니까 진정한 복수는 나를 잃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불행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그들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복수다.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행과 무관해질 만큼 끝까지 나로서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승리이자 가장 강력한 한 방이다.
나는 거짓과 마주해야만 했던 소송을 겪으며 이 사실을 더 깊이 깨달았다.
판사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이 나의 방향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누구나 억울하다.
심지어 남을 속인 이들조차 억울하다고 말한다. 뻔뻔함은 그들의 원래 얼굴이었으니까.
그만큼 우리는 이미 불공평한 세상의 출발선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억울하다고 복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억울함을 각오하고 세상에 온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가 울면서 태어나는 것 아닐까.
그 기로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길로 나아가는 것.
불행은 우리를 성숙하게도, 비참하게도 만든다.
더 울며 헤매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를 잃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 길 끝에서 마주할 나는 누군가에게 이기고 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성장해 완전해진 사람일 것이다.
세상이 흔들어 놓은 모든 상처들을 훌훌 넘어,
끝내 나를 지켜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유롭고 빛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