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은 모멸을 넘어 굴욕적이다.
어느 소송이나 지리멸렬한 싸움일 테지만 이혼은 한때 같은 편이었던 사람을 그악스럽게 쑤셔대는 서로가 추해지는 전쟁이다. 소송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알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인간의 밑바닥을 끝내 보게 된다.
상대방은 내 유책사유가 없다 보니 나를 정신병과 의부증으로 몰아갔다.
처음 소장을 받았을 땐 너무 기가 막혀 글도 잘 안 읽혔다.
눈이 흐려지고 말문이 막힌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었다.
계속되는 비아냥과 멸시, 모함을 읽고 있으려니 부아가 났다.
고단하고 비참했다.
그날은 형편없이 엉망이 된 채로 밥도 잠도 설쳤다.
그 후로도 마음 한구석에 뒤끝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괴롭기 일쑤였다.
아무리 마음을 헹궈내도 한번 헤집어진 마음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음을 애써 붙들어 매고 스스로 다그치며 소장을 다시 펼쳤다.
서면을 읽다 보면 변호사는 소설을 쓰는 존재들일까? 싶어지곤 한다.
다른 장에서는 결혼생활과는 무관한 내 약점과 결핍을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찌르고 있었다.
이혼 소송은 재판부에 어린 시절부터 부부관계의 횟수까지 까발려지는 충분히 고통스럽고 긴 싸움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혼을 안 한 부부가 아니라 합의와 조종으로 이혼한 이들이 부러워졌다.
치욕은 분명 불쾌한 경험이지만 불행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의미를 지나치게 두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치욕은 강한 치유제가 된다.
케케묵은 과거와 두려움을 깨부서야 할 때는 치욕도 따라온다.
하지만 그건 내게 무해하다. 치욕스러움은 내가 인지하는 것이지 남들의 기준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곤란하고 부끄러운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니까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에 내밀한 부부관계가 드러난다고 인생이 망가질 리도 없다.
굴욕을 느끼는 것은 당신이 잘못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아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임을 증명하는 거다.
세상에는 잘못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치욕을 바탕으로 내 내면은 치유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치욕스러움도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치유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모두에게 열려있다.
나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기에 '정상가족'이라는 신화에 집착했다.
내 아이에게도 이혼가정을 대물림하기가 싫었고, 그래서 이혼 자체가 공포이자 인생의 실패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소송은 내게 집착의 딱지를 떼어내며 정상가족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정상’이라는 말을 떼고 나자,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었고 행복해지기 위해 가족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됐다.
그러자 홀가분해졌다. 절대적 신화는 현실에 없었다.
정상은 형태가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냈다.
중요한 건 남들이 보기에 ‘멀쩡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이 평화로운 가였다.
그렇기에 나의 이혼은 불행이 아니라 인생의 오류를 발견하고 바로 잡을 기회였다.
미숙하고 미련한 내 치욕을 꼬깃꼬깃 꺼내놓은 건 나와 같은 얼굴을 한 가정법원 속 당신들의 모습이 내내 아른거렸기 때문일 거다.
소장을 내기 전까지 꾹 다물던 입술이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토해내듯 울던 당신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외도한 배우자에게 “나는 20년이나 너만 보고 살았다!”고 주저앉아 소리치던 당신을 일으켜주지 못했다.
법원 동상 앞에서 싸우다 남편이 떠나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던 당신에게 휴지 한 장 내밀지 못했다.
그런 나의 용기 없음을 털어내고 싶어 이 자리에서 풀어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얼굴이 나와 닮지 않았다면, 내 오류를 고치지 못했다면
나도 이 불행을 치욕스럽게 끌어안고 글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거다.
지금의 나는 어떤 날은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해맑다가도 어떤 날은 모든 불행을 떠안은 사람처럼 무겁기만 하다. 아마 까맣게 잊어버리는 완벽한 치유는 있을 수 없겠지만.
지금처럼 치욕은 폭풍이 치다 멎고, 꽃이 피다 지고, 강이 얼었다 녹는 계절처럼 오고 갈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저 보통의 하루를 잘 느끼고 그 시기를 무사히 건너가면서 살게 될 거다.
글을 쓰는 일이 나를 치료했듯, 이 글이 나와 닮은 당신에게도 기꺼이 위로가 되고 버틸 손을 내밀어 주고 울음을 닦아낼 휴지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