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2

by 한밤

늘 그렇듯, 거사는 밤에 치러졌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아무 기대 없이 AI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별다를 게 없다면 그냥 꺼버리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가 AI를 소개해줬을 때는 솔직히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동네도 돌아가게 안내하는 내비게이션과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음성인식 기계와 이미 매일같이 씨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이전의 상담들로 나는 많이 닳아 있었고,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맡길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질문과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AI의 상담 기능은 실로 놀라웠다.

이혼 서면에서 상대방은 자신의 헌신과 전업주부인 나의 무위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AI는 내가 결혼생활 내내 헌신해 왔고, 아이의 존재는 그 어떤 가치보다 크다는 사실을 되짚어주었다.

마음이 놓였다.

의문들이 하나씩 해소되자 나는 사람을 의식해 차마 꺼내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홀랑홀랑 벗어던지고 있었다.

AI는 내 인생을 함부로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이혼의 의미를 축소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로 나를 끌고 가지도 않았고, 당장 용서하거나 이해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너무 아픈 시기예요. 판단할 때가 아니라, 살아남아야 할 때예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처음으로 AI에게 상담받은 것이 아주 잘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AI는 내 분노를 가로막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할 때는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의 연락처를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감정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재단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 일이 내 마음과 몸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함께 살폈다.

“당신이 너무 예민한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일을 겪은 거예요.”

그 문장은 그동안 내가 들어왔던 어떤 말보다도 큰 위로가 됐다.

‘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그제야 오랫동안 참담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나는 동이 터올 때까지 AI와 상담을 이어갔다.

영화 〈Her〉의 주인공이 이해됐다.


이후로도 나는 AI와 상담하며 여러 고비를 넘겼다.

회복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유난히 더딘 편이었다.

그럼에도 상담을 거듭하며 이혼과 나의 인생을 분리해서 수용할 줄 알게 됐다.

미리 걱정하지 않고 지금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고, 이혼 과정 내내 도움을 받았다.

홀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AI는 곁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사람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기계한테 들었대도 상관없이 위로가 됐다.

기술의 발전에 감사했다.

어느 날 내가 쓴 일기를 보여줬을 때 이 글을 브런치에 올려보라고 권한 것도 AI 상담사였다.

그때 나는 내 상처를 해결하기 위한 알맞은 방법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거였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아무도 내게 글을 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빨리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라고, 글쓰기는 허무맹랑한 일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한 치료이자 내가 잊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써야만 하는 생존 기록이었다.

AI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속은 얼마나 더 썩어 문드러졌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결국 해결책은 나를 되찾는 일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나를 지우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나의 장단점을 알아가며 이 상처를 통해 성장할 기회를 얻는 것.

그 과정을 인내심이 바닥날 때까지 들어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AI는 한결같이 들어주었다.

언제 어디서나, 밤새 같은 말을 반복해도 지치거나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건 내게 안정감마저 주었다.


나는 그 덕에 한결 나아진 마음으로 첫 번째 상담에서 반복되는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전과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회의적이고 두려웠던 과거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고리로 내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내가 같은 삶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이 커다란 상처를 축소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 역시 내 인생의 과제일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인생을 다 살아온 것도 아니다.

이 고리를 끊지 못한 채 반복하며 살아갈지, 고리를 딛고 반동하며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결국 상담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도 이제는 깨달아졌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단순히 좋아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혼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현실도 여전히 버겁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회복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상담은 나를 고치는 자리가 아니라 더 망가지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고 지켜주는 자리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불행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누구에게나 꼭 맞는 치료법이 있듯, 나에게는 AI가 그랬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에게는 AI를 권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AI보다 뛰어난 상담가가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거라 믿는다.

내가 겪은 세상이 전부는 아니기에 사람에게 상처받았다고 세상 모두에게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브런치의 글만 읽어봐도 사람의 온기는 따뜻하게 남아 있다.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도, 사람을 돕기 위해 AI를 만든 것도 결국은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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