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는 '불행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 나무 앞에 서면 내가 겪은 불행과 타인의 불행을 서로 바꿀 수 있다고 안내를 받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걸린 비슷하거나 각기 다른 불행들을 꼼꼼히 살펴보지만 결국 그곳을 찾은 모든 이가 자신이 지닌 불행을 다시 집어 들고 돌아선다고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신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 주신다'는 교훈으로 마무리된다.
불행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고통이 매달려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산산이 부순 상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외로움과 수치, 예고 없이 찾아온 질병과 이별들.
어쩌면 내가 겪은 고통보다 더 가혹한 것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이는 상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기 불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고통을 이미 한 번 지나왔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불행을 뚫고 살아낸 ‘짬바’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이미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낯선 고난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헤매느니 익숙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려는 선택은 회피가 아니라 생존이고 본능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 불행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지나고 보면 1살, 11살, 21살, 31살, 41살… 신기하게도 10년 단위로 각 시기마다 나를 뒤흔든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다.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후유증처럼 남아 있는 기억들이고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을 만큼 방향을 바꿔놓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불행인가?’ 싶을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저런 일을 겪고도 살고 있네’ 싶을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불행마저 크기를 재며 구분짓는 세상이지만, 어쨌든 내게 중요한 건 그 크고 작은 폭풍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또 다른 세상 속에서도 적응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51살, 61살, 71살, 81살… 어떤 고난이 나를 또 시험할지 모른다.
이제 것보다 더 아프고 더 힘든 일이 올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하나는 분명하다.
이 불행 또한 지나갈 것이며, 결국 내가 다시 기꺼이 선택할 만큼 견딜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건 인생의 진리이자 공식이다.
지나고 보면 고통만큼이나 기쁨도 있었다.
불행의 틈새에도 평온과 웃음이 있었다.
다만 너무 선명한 불행이 때때로 그 모든 행복을 가려버렸을 뿐.
그래서 나는 치가 떨리게 싫은 이 말을 다시금 믿게 된다.
“신은 견딜 수 있는 고난만 주신다.”
우리는 생각보다 불행을 잘 견뎌낼 수 있다.
그 안에는 버틸 수 있는 시간도, 마음도, 생각도, 길도 언제나 함께 열리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살아냈던 삶이 이미 그것들을 증명해 준다.
그러니 당신의 짬바를 절대 무시하지 말자.
새해에도 우리는 기필코 잘 살아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불행이 와도 이겨낼 짬빠가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는 불행보다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