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요구

헤어짐

by 무지개

출근하자마자 영은이는 내 곁에 뛰어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저 내일 마지막으로 센터에 와요"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는

영은이의 말이다.


이 말은 '헤어지는 저에게 선물을 주세요'의 속 뜻이다.

영은의 마음을 알기에 못 알아듣는 듯

"그래? 만나자마자 헤어지네?"라고 말하고

한번 더 바라보며

" 영은이가 보고 싶을 거 같은데 어쩌나?"

하니 상냥한 목소리로 미소를 보이며

영은이는 "그렇죠?" 하고 답하였다.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한다.

일 년마다 여러 센터를 순회하며 근무하는 아동복지교사이다.

일 년마다 순회하다 보니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짐이 반복되어

나도 어쩌면 헤어짐이 익숙한 것 같다.

이별이 아쉬워 개인사비라도 털어

아이들에게 마음의 표식을 해야겠다는 오래전 생각은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있다.


영은이와 만난 시간은 두 달 정도 되었다.

나는 영은이의 말을 센터선생님들과 이야기해 보았다.

영은이는 나의 예상대로 모든 프로그램 선생님들

에게 헤어짐의 선물을 요구하며 받았다고 한다.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동복지교사로서

무료급식, 무료간식, 무료학습, 무료프로그램,

무료현장체험 이러한 것들은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꼭 필요한 복지 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료로 여러 복지의 혜택을 받고 자랐으니

그것이 당당하게 요구하여야 한다는 말은

또 다른 것이다.


영은이가 혜택을 받기까지 사회의 기대

이러한 복지를 현장에서 관리하고 사랑으로

분배하기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 마음을 알까?


초등 몇 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정이 들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센터 선생님들 그 아이의 스토리가 있을 텐데

보이는 물질로만 당당히 요구하는

영은이의 마음을

갑자기 "스톱" 시키고 싶었다.


"영은아!

난 네가 오늘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일 선물을 잊지 말고 가져오라는 뜻인 줄 알아."

" 정말요? 역시 선생님!"

하며 똘망한 눈을 크게 뜨고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

영은이에게

" 큰 선물은 없고 사랑의 표시로 초콜릿을 준비할게."

라고 하니 다행히 아이는 작은 선물에도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데 조건이 있어. 선물은 주고받는 것. 선생님도 받고 싶어"

"제가 왜 선생님을 줘야 돼요? 우리가 받는 건데?"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놀란 표정으로

목소리에 힘주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런 영은이를 바라보지 않고

나는 혼자 시를 읊듯

문제집을 채점하면서 말했다.

"떠나는 사람은 남는 사람을 위해서,

너와 피구하며 추억이 많은 동생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수고하고 너를 사랑하고 아껴준

센터 선생님들 위해서

너에게 맛난 밥을 하신 주방 선생님들을 위해서

마음의 편지를 써줘!" 하고 말하고

웃으며 영은이를 바라봤다.


"학교 선생님에게도 안 쓴 편지를요? 요즘에 누가 그런 것을 써요?" 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금방 "좋아요" 한다.

아직도 영은이는 선물이 좋은 순수한 아이다.


영은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피구 시간을 줄여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가서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오랫동안 생각하여 편지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초콜릿을 받아갔다.


초콜릿을 들고 가는 영은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예전에는

물질이 풍부하지 않아도 정을 나누며 서로를 챙겼는데

지금은 물질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풍부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세상이 되었다.

아이가 메마른 마음으로

당당하게 요구하는 아이의 말은 어쩌면

우리 어른의 책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꼰대 일지도 모르지만,

인간과 인간의 이별은 가볍지만은 않고

특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작은 희로애락들을 가볍게 넘기는 아이의 마음을

편지를 통해 조금 깊게 들여다봤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곳에서 받은 혜택을 우리가 속한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조금은 책임감이 붙은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나도 안다.

아이의 허전한 마음이

눈에 보이는 선물의 개수를 늘려

물질로라도 보상받고 싶었음을~

그러나, 청소년의 첫발을 내딛는 영은이가

받고 싶은 만큼 주는 마음도 배워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초콜릿에 담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