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책
올해 85세가 되시는 친정엄마.
신체 나이는 100세와 같다.
전라남도 해남이 고향인 엄마는 5남매 중 딸로는 장녀이시다.
결혼 전까지 엄마는 가정에서 동생들만 보살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여자에게 교육의 기회는 많지 않아 엄마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으셨다.
철없던 어린시절 난 글도 잘 읽고, 상냥하고, 세련된 친구의 엄마가 좋았다.
엄마는 한글을 모르셨다.
그러하니 엄마와 나는 대화가 별로 없었다.
숙제도 같이 할 수 없었고 엄마는 무뚝뚝 하여 놀이도 같이 못했다.
집은 가난하여 엄마는 늘 직장을 다녀야만 했다.
그러므로 엄마와 추억은 별로 없다.
기억에 남는 추억은
어느날 엄마가 일을 마치고 나의 방에 들어와 보더니 대뜸 이야기 책이 갖고 싶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그 시절 회사로 책을 팔러온 아주머니에게 50권이 된 문학전집을
망설임 없이 할부로 사오셨다.
아마도 엄마는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 생활도 힘들었는데 할부를 갚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마루에 앉아 책읽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 하시던 젋은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제인에어> <소공녀><데미안><테스> 등을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엄마는 70이 넘은 후, 한글을 배우셨다.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도 완벽하게는 모르신다.
내가 친정에 갈 때마다 안방의 벽에 기대앉아서 언제나 성경책을 읽고 계시곤 한다.
거의 매일 읽었는지 성경책 종잇장은 원래보다 3배는 부풀려져 있어서 사전보다 더 두껍게 보인다.
이번 명절에도 친정집을 가니 아픈 허리를 옷장에 기대어 미동 없이 성경을 읽고 계셨다.
한 손으로는 잡히지 않은 부풀어진 성경을 들고 작은 목소리를 내며 읽고 있었다.
글을 모르는 데 집중하여 읽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엄마에게 읽고 계시는 성경의 한 부분을 펼쳐 읽어 보라고 하였다.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으로 성경 속의 작은 글자를 짚으며
“너가 안에 있고 너가 원한다.”
라고 읽고 난 후 엄마는 멋쩍은 듯 나를 보며 소녀처럼 ‘허허’하고 웃으셨다.
그런데 성경 속의 내가 본 글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였다.
순수한 아기처럼 엄마가 웃는 것을 보고 나는 “엄마, 잘 읽으시네” 하였다.
“그런데 엄마! 무슨 뜻인지는 알아요?” 하니 “몰러, 교회에서 읽으랑께 보제”
그렇게 엄마는 글을 모르지만, 몇 시간을 읽으며 권사의 직분을 지키신다.
엄마는 나에게 권사라는 직분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명절이라 엄마의 머리를 파마한 미용실 아주머니가 배웅하며
“권사님, 제가 잡아 드릴게요.” 하기 전까지는.
구부러진 허리로 성경 가방을 들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몇 번 봤지만
불편한 다리로 지팡이를 짚고 교회를 한 번도 빠짐없이 다니는 것은 몰랐다.
부끄럽지만, 글을 아는 나는 만년 평신도다.
이렇듯 신앙은 엄마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있다.
한글을 모르므로 엄마는 일상생활 모든 것을 짐작으로 사는듯 보인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알고 있는 단어를 모두 사용하여 우리들의 이야기에 참여 한다.
때로는 생각나는 말로 주어 없이 사투리를 하므로 나는 엄마 말의 뜻을 이해 못 하곤 한다.
글을 모르므로 세상 이치가 어려워 대인관계에서 뜻밖의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엄마의 언어는 사투리의 억양이 강해 본인의 의사와 달리 대인관계 에서 갈등도 일어난다.
말하기가 앞선 내뱉기식 엄마의 언어는 항상 아이처럼 보살핌이 필요 하다.
그 역할을 아버지가 하신다.
모든 말은 아버지의 해석이 필요하다.
내가 주방일을 하다가
싱크대 설거지를 하면서 물이 바닥에 떨어지면 엄마는 나에게
“물이 엇끌어지니까 쓰봉 좀 추숭기면서 해라!” 하신다.
이 말은 “물이 쏟아지니 바지 좀 올리고 해라”라는 뜻이다.
밥을 하기 위하여 쌀을 씻다가 흘리면
“쌀이 아깡게 허칭그리지 말고 씻그라!”
이 말은 “쌀이 아까우니 흘리지 말고, 씻어라.”이다.
말이 길어지면 해석이 더 힘들다.
“아까징께 너그 아부지가 허청에서 바께스 갖고다 자빠져서 물팍이 깨끼고 그랑께 허청좀 가봐서 추숭겨라.”
이 말은 ‘조금 전에 아버지가 창고에서 그릇 가져오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다치고 그랬으니 가서 정리해라 .’이다.
창고 정리를 하며 나는 문득,
글을 모르는 엄마에게는 살아오는 세상이 어둠뿐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
글은 상황을 알려 주지만 모르는 상황을 혼자 짐작하니 엉뚱함이 발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몇십 년 동안 엄마는 변함없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렇게라도 자식과 소통하고 싶어 하였던 엄마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 보인다.
그동안,
무심결에“엄마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고 수없이 반복하며
고쳐 말 하도록 짜증도 내고 발음이 부족한 엄마의 말을 못 들은 척도 했다.
그때마다 꿋꿋하게 웃으며 “내 말이 그랑께 좀 서투르제”
엄마는 우리에게 늘 이해를 바라고 자식 이라면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말 이였을 것이다.
엄마의 답답함은 해아리지 않고 소통을 불통으로 받아온 날들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해하지 못한 성경책 이지만,
만지고 만져 부푼 성경책을 붙들고 세상과 단절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다.
할부를 끊어 서라도 딸에게 책을 선물한 그 옛날 엄마의 마음은
너는 배워 세상과 단절하지 마라는 엄마의 신호였다.
자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서투른 말이지만 자식과 소통하려 했던 엄마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엄마의 마음의 눈을 바라보며 엄마의 언어에 소통을 시도 하려 한다.
그래서 딸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언어는 특별하다.
나도 이제는 늙나보다.
세월이 갈수록 낱말도 잊히고 문장도 어순이 바뀌고 있으니 엄마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미래의 나도 딸의 엄마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