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이별을 묻으며 2

결혼

by 무지개

오늘은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이 오면 시골집 마당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아이처럼 좋아하며

나를 바라보고 만족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비로 눈을 쓸다가도 녹는 눈이 아까워서 눈 뭉치를 만들고

자고 있던 딸아이를 깨워 눈싸움하던 모습이 어제 일 같다.


날씨는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날은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말없이 담배를 피우던

남편의 뒷모습이 나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남편의 일은 땅이 젖으면 일이 진행이 안 됐다.

비 오는 날은 창가에 서성이며 하루 종일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차질이 있을까 봐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렇게 일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때도 그랬다.

목표가 있으면 책임감은 한 곳만 바라봤다.

나의 일과가 끝나면 교습소 앞에서 늘 웃는 모습으로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행동은 만남의 횟수가 늘수록 나도 모르게 의지를 많이 하게 했다.


변함없이 무엇이든 아버지처럼 내게 다가와 내 어려움도 해결하여 주고

내 응석도 다 받아주었다.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그는 자신을 마당쇠라고 하며

보호자 역할을 즐겁게 하여 주었다.


만남이 길어지며

사소한 일도 정이 많고 내 의사를 존중하는 따뜻한 면도 자주 보여 주었었다.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내 의사를 긍정적으로 바꿔가며

추진력과 자신감이 넘쳐 믿음이 가도록 해결하였다.

그가 보기엔 아기처럼 행동하는 내가 미덥지 않았는지

내 일에 대한 방향도 망설였던 일들도 결정하도록 적극적으로 제시하여 주었다.

그를 만나면서 움츠려 있던 내 자신감과 소심한 내 성격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만나는 동안 출장이 많았던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그 시절 유행하던 호출기도 나에게 사주었다.

일 때문에 다른 지역 출장을 자주 다닐 땐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일과를 보고

하며 신뢰를 쌓으려 노력했다.


결혼 후, 언젠가 남편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나를 왜 그렇게 쫓아다녔는지 물었다.

남편은 내가 생활력이 강하고 순수하여 2세 교육을 잘 시킬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였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듣지 못했지만,

남편은 어머니를 일찍 잃어 엄마처럼 자녀에게 따뜻한 엄마의 사랑과

가정교육이 결혼의 중요한 요건이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사는 동안 그러하지 못했다.


결혼 적령기가 넘어 만난 우리는 연인으로 만난 시간은 짧았다.

그때까지도 비혼주의를 말했던 나와 달리

그는 늦게 만난 만큼 결혼을 서둘렀다.

자신의 직업 특성상 이동이 많아 안정을 찾고 행복한 가정을 갖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만남을 이어 가던 중 결혼과 만남은 다른 것.

거친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 상남자 자체였다.

만나면서도 로맨틱하지 못한 남편의 방식이 불평과 불만이 많았다. 결혼의사에 망설임이 길어지자.

어느 날,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는지

반지와 꽃다발을 가져와 수줍고 어색하며 서투른 표정으로 프러포즈도 했다.

내 꿈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서 내 꿈에 응원과 지지를 해 주었다.

도울 터이니 자신이 사는 소도시에 대형 학원을 건축하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다.


그렇다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조그만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노총각이었다.

만나는 동안 자신이 사는 집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텅 빈 통장 등 모두 나에게 솔직히 공개하였다.

결혼 전 돈은 그에게 모을 목적이 없어서

모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를 만나면서 목적이 생겼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라는 자신감만 있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그해 가을 우리는 결혼을 하였다.

식장을 걸어가며 싱글벙글하던 남편의 모습은 어제 일처럼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사람들은 남편이

나를 볼 때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도 하였다.


순수함 그대로 남편은 약속을 지켰다.

결혼을 한 후 남편은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었다.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남편의 성실함과 일에 대한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다.


긍정적이고 쾌활하며 능력도 탁월하여 한 번 남편에게

맡긴 회사는 계속 남편을 찾았다.

대기업, 중소기업, 공기업 등 일이 많았다.

결혼생활 동안 사람들은 늘 끊임없이 남편을 찾아 항상 바빴다.

그래서 내가 외로울까 봐

결혼 후 자신이 사는 소도시에 처음에는 조그만 교습소를 하게 해 주었다.

아이가 출생하고 난 후,

이동이 많은 일을 내가 싫어하자

자기 일을 과감히 정리하고 나를 도왔다.


나 혼자 운영하였던 20명이 안 됐던 교습소는 남편이 합류하여

남편의 추진력이 빛을 냈다.

원래부터 다정했던 남편은, 아이들도 아빠처럼 매우 좋아했다.

엄격한 나와 달리, 격이 없이 아이들을 사랑한 남편을 잘 따랐다.

모든 아이들은 사소한 이야기까지 잘 들어주는 남편을 "삼촌"이라 불렀다.

남편의 다정함과 친절함이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이 돌아

원생은 몇 개월 내에 50명 100명 200명이 되었다.

학부모들도 내 능력보다 남편을 더 믿고 좋아했다.

남편은 결혼 3년 만에

내게 약속으로 했던 2층 주택을 지어서 아이를 키우며 학원을 운영하도록 하였다.

딸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유치원과 초등 6년을 딸아이를 혼자 등하원 시켜주며 아빠와 추억을 만들었다.

장롱면허로 운전을 못 하는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 결혼기념일에는 자동차도 사주며

자유롭게 살도록 하여주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성보다는 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때론 남편의 감정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결혼 후 서로 다른 성격으로 갈등도 많았다.


그때는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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