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겨울은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계절이다.
이 겨울 내 안의 묵혀 두었던 마음의 밭을 뒤집으며
내 안에 남편과의 이별을 글로 남기며 이제는 묻으려 한다.
7년 동안 남편은 나의 꿈에 매일 등장하였다.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토라지기도 하며 웃음 띤 개구쟁이 모습으로
장난도 하며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꿈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이 나타나면 좋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을 깊이 공감한다.
1년 전부터 남편이
이제는 꿈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별이 내 마음에서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 누구 보다 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예고 없이 바람처럼 사라졌지만
분명하게 열심히 살아온 흔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어주면 미소를 띠며 듣던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 글에 칭찬도 아끼지 않으며 우리 만남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라디오 사연 듣기를 좋아한 남편은 내게 비친 첫 만남을 라디오를 통해 듣고 싶어 했다.
그때는 쓰지 못하였지만...
결혼 전 나는 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대학을 평범하게 다니지 못하였다.
나의 일도 자연스럽게 늦어져 결혼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어렵게 졸업을 한 만큼 그보다는 나의 일에 대한 꿈이 있었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다.
졸업 후, 나만의 학원을 개업하기 위하여
밤을 새워가며 알바든 직장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하였다.
그 덕분에 27살이던 해 내가 사는 도시에서 작게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
조그만 교습소였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즐거웠었다.
어렵게 시작한 일이었던 만큼 경험을 토대로 하여 대형 학원도 운영하여보고 싶은 꿈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시설이 열악하고 경험이 부족한 이유로 학원생 모집이 쉽지 않았다.
어렵게 원생이 늘고 일이 재미를 느끼게 될 즈음
내 주변으로 대형 학원이 늘어나 시설이 좋고 경력이 많은 학원으로 원생들이 하나, 둘 이동하였다.
학원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듦과 외로움을 느끼게 될 무렵 남편을 만났다.
그 시절에는 24살이면 약혼과 결혼을 했다.
친구들은 졸업 후 직장을 1~2년 다닌 후 약혼과 결혼을 바로 했다.
혼자 일만 하는 내가 외로워 보였는지 일찍 결혼한 지인이 남편의 친구를 소개했다.
결혼에는 적령기가 있다며 가볍게 만나라며 소개했다.
가볍게 만나자 하고 나간 자리에서 남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29살, 남편은 30이던 해
4월의 봄을 알리는 벚꽃이 활짝 핀 계절
도시 중심가 지하 커피숍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어두운 커피숍에서 보일 듯 말 듯 나를 기다리며
복도 끝 칸막이 사이로 실루엣처럼 보인 그는 멀리서 보아도 키가 커 보였다.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가까이 다가가 마주한 얼굴은 까만 피부였지만,
첫눈에도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남형이었던 남자다운 풍채가 눈에 띄었다.
내가 앉자마자 나와 달리 낯가리지 않고
인사하며 순수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하였다.
사투리가 섞여 있었지만, 시원시원한 어투를 사용하며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가식이 없이 듣는 이에게 솔직함을 느끼게 말을 이어갔다.
이런 자리가 어색하고 우물쭈물 말하지 않는 소심한 나에게는 안도의 마음도 들게 하였다.
한 살 터울이지만 어쩌면 아저씨 같았고, 듬직한 체격 때문인지,
내 주변의 온실처럼 자란 남자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말없이 듣자니 오랫동안 만나왔던 사람처럼
그는 나를 편하게 하는 마음도 갖게 했다.
묻지 않았지만,
첫 만남에서 그는 자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직업, 나이 부모님, 형제 관계, 살고 있는 집, 결혼관등
7남매 중 셋째인 그는 일찍 독립하여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나에 관한 이야기는 묻지 않아서
말없이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며
‘조금은 독특한 화법이구나!’ 생각하고 흘려듣고 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대통령 하고도 안 바꾸고 싶은 일이라고 직업에 대한 소신을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고 누구보다 더 최선을 다한다고 하였다.
그가 하는 일은 누구나 선호하는 일은 아니었다.
이동이 많은 건축과 관련된 일이었다.(그래서 결혼이 쉽지 않아 나에 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보다는 한 살 위이지만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강한 책임감이 느껴져 나이보다는 어른스러움도 보였다.
조금은 허풍스럽기도 하였지만 거짓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힘이 있는 목소리로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이야기하며
대화 중간중간 또는 끝마다 자주 웃는 모습은 호탕하고 순수하며 밝았다.
들판의 야생마처럼 전혀 다른 색깔의 소유자 흔히 말하는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의 부모님은
내 인생에 관여하지 않았다.
경제적 독립을 일찍 한 나는 늘 내 인생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살았었다.
자라는 동안 가난한 살림살이에 자식도 많았던
부모님은 우유부단한 성향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결혼 전 소심한 내가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고 불안한 결정을 했다.
첫 만남부터 어쩌면 결단력 있고 거침없이 적극적인 남편의 모습이 호감이 갔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한 번의 만남으로 그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며 만남을 주도하였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달콤한 연애는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보내온 신호는
그냥 계산 없이 조건 없이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그는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없이 다정했다.
(다음 편에 이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