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이 남긴 시골집

시골집

by 무지개

2018년 설 연휴가 끝나갈 무렵 남편은 하늘로 떠났다.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울었던 8년, 나에게 아픈 8년이 지나갔다.

세월은 나를 무덤덤하게 만들었지만,

빈자리는 여전히 남아 기억 속의 남편은 제자리다.

또다시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시아버님은 어머님과 살았던 집이 불편해도 수리를 못 하게 하였다.

시아버님은 어머님의 흔적이 없어지는 것을 싫어하셨다.

남편이

혼자 계신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낡은 시골집 정리를 할 줄 알았다.

나의 바람과 달리 남편은 혼자서 틈 나는 대로 시골집수리를 했다.

시골집을 혼자 수리하며 함께 사는 동안

시내에 있는 우리 집보다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남편은 시골집을 살아생전 무척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여 보니

일찍 어머니를 잃은 남편은

어머님과의 추억이 있는 이 집을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한 남편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남편이 떠난 후 시내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시댁 식구들도 놀랐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하리라 할 만큼

나는 시골집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이 보기에도

빠르게 적응할 정도 시골 생활을 잘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은

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남편의 흔적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내가 지금껏 버텨온 것도 남편의 흔적이었다.

어쩌면 지금 머무는 시골집이 곧 남편이었다.

우리는 주말 부부였다.

때론 월말 부부였다.

직업 특성상 남편은 경기도에 많이 머물렀다.

나는 고향에서 늘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은 고향을 돌아가신 엄마라고 생각해서 고향을 떠나오지 못했다.

특히 자신이 태어난 시골집은 많은 시간을 보낼 만큼 더욱 편안하게 생각했다.


29살이 되던 해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하여 처음 인사를 드리러 왔던 외진 시골집.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소나무가 심어 있는 조그만 야산을 지나니 작은 마을이 보였다.

마을을 뒤로하고 조그만 야산의 길모퉁이를 돌아 외딴집

길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오래된 슬레이트로 된 지붕이 보였다.

슬레이트로 올려진 지붕은 예전의 초가집을 연상하게 하는 작은 오두막집처럼 보였다.


차에서 내려 바라본 집 앞마당은

얼마 전 비라도 온 듯 황토 마당이 울퉁불퉁 고르지 않게 파여 있어 어수선하게 보였다.

남편이 가끔 이야기하였던 ‘장화 없이 못 사는 동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잡초가 듬성듬성 보이며. 잡초 속의 맨드라미와 접시꽃이 섞여

간간이 부는 바람에 꽃들이 풀숲 사이로 보이기도 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시어머님이 이 꽃을 좋아하여 심었다고 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지만,

집안에 들어서기가 망설여지는 집의 첫 느낌은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구나!’였다.

첫눈에 보아도 오랫동안 수리가 되어 있지 않는 허름하게 길 아래 위치한 작은집

집 앞에 있는 기다란 창고는 지붕이 반쯤 없어진 상태로

흙벽으로 마감이 된 듯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자리하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는 들깨가 가득 빈틈없이 심어져 사람이 살지 않은 들판처럼 보였다.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 미터 정도의 마루높이에 발을 딛고 올라서 방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방 안에는

성인의 키에 닿을 듯 말 듯한 천정이 도배지가 축 처진 채로 늘어져 있었다.

시아버님은 홀로 낡은 이 시골집에서 살고 계시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집의 형태로 수리를 안 했다고 하였다.

시어머님은 남편이 고등학교 시절 병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그렇게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시골집

결혼 후 아버님은 혼자서 10년, 우리와 함께 3년을 사시고 돌아가셨다.

혼자 시골집에 계신 아버님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미래는 알 수가 없다.

내 미래가 아버님처럼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지금 나는 아버님의 모습으로 이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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