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과 파이팅!
눈 오는 토요일 오후 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났다.
눈을 맞으며 약속 장소로 가면서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여 보았다.
그 후배들을 보면 나의 자화상을 마주하는 것 같다.
이제는 과거가 된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후배들은
나에게 아픈 비밀의 추억을 송환하게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나 무엇을 하고 싶었나 보다는 평범한 일상
보통의 평범한 삶 속의 내가 되고 싶었었다.
과거의 10대와 20대의 나는 과거를 오려내기 할 만큼 힘들었다.
10대 시절 나는 항상 머릿속에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하여 현실 속에 없는 내가 되어
소설 속의 나를 만들며 버텼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의 내가 아닌 평범한 일상과 보통의 삶이 될 미래의 모습들을 상상하며
살아온 날들이었다.
결혼 후 난 화려한 포장지에 싸여있는 내용물이 분명하지 않지만 평범한 상자로 보였다.
굳이 사람들이 선택한 화려한 색의 포장지로 덮여 있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상품성이 떨어질까 봐 지나온 과거에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내용물을 확인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가 늘 두려웠다.
난 태어날 때부터 아주 가난한 집의 아이였다.
지금의 나는 가난하기에 겪어야 했던 경험들과 아픔들이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지금도 꿀꺽 삼켜야 하는 비밀처럼 도려내고 싶은 아픔의 날들이었다.
그 시절 끝없는 가난은 나를 치열하고 전투적인 자세를 만들게 하였다.
일찍 사회생활을 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였던 미성년자의 나는 평범한 내 또래의 학교생활은 없었었다.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이제는 정면으로 바라보며 글을 통해 구석에 혼자
웅크릴 만큼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려 한다.
글은 쓸수록 두려움도 생긴다.
주인공을 내세우며 알고 있는 경험을 쓰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마력이 있다.
그러면서도 ,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지 않았으니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글 앞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글을 쓰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솔직함을 뱉어내게 된다.
그러한 점은 글이 행복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왜 글을 쓰면 행복한가?' 그 행복이 이끄는 방향으로 늦었지만 올해는 가까이 가보려 한다.
글에 접근하면 할수록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의 존재를 알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늦은 국문학과에 편입을 결정하였다.
유명한 작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한 후배가 이야기한다.
“언니야!”
“난 독서를 싫어하지만, 언니 글은 읽어.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잠깐 휴식을 하며 읽으면서 소매로 눈물을 한참 닦았어.”
“언니야! 글 계속 기다리고 있어. 숙자 누나는 잘 있어? 땅콩은 내년에도 심을 거구?”
글 뒤의 저편에는 내 아픔을 이야기하면 공감하여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사람도 아프다는 것을...
아픔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물고 있다.
삶이란! 아픔과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 공간을 공유하며 버텨내고 살아내고 있다.
나는 지금 삶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과거의 나와 대화하며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어 본다는 것은
잊은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부끄러움도 없었는데.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얼버무렸던 과거를 꺼낼 만큼의 용기는 아직은 없다.
자신을 보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솔직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누군가 새해 계획을 말한다.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며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이것이 새해 계획이다.” 나도 이 말에 공감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공감 가는 작가가 되는 길을 계속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