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람들은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보약을 먹는다.
보약에는 단맛, 쓴맛, 텁텁한 진한 맛, 톡 쏘는 맛 더불어 보약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다.
그러한 보약을 먹으면 내 몸이 좀 더 단단하여지는 듯한 상태를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은 정신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
내게는 보약 같은 친구들이 있다.
쓴맛을 지우고 싶을 때는 단맛을 찾게 된다. 감초처럼
감초가 되어줄 단맛이 생각나면 수다 대상을 찾아 전화기를 누른다.
수화기 너머 언제나 내 이름을 상냥하게 불러 주는 친구는 단맛이 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나라 걱정까지 그렇게 깔깔거리며
몇 시간 통화를 하다 보면 당이 충전된다.
이 친구는 공감이라는 진맥을 잘한다.
중개업을 하는 친구는 손님에게도 세심한 배려와 열정이 넘쳐 보인다.
밝은 에너지는 나에게도 전염이 된다. 그리고 일주일을 보낸다.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주말에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그렇게 몇 년을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여도 우리는 또 깔깔거리며 웃는다.
이 친구는 대학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로 가끔 싱그러운 장미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늘 상냥함과 내,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친절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또 한 친구는 내가 학원을 운영하던 시절 학부모였다.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와 인연은 중간에 남편의 역할도 컸던 것 같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대화하지 않는 무뚝뚝함이 있다.
남편은 학원생 부모에게도 살갑게 대하는 편이라 이 친구와 가깝게 지내게 됐다.
친구는 자연을 무척 좋아한다.
내 집의 자연환경을 나보다 더 좋아한다.
자연에서 얻는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가 직업이라 옆에서 많은 건강한 요리를 얻어먹곤 한다.
이 친구는 소나무의 향이 있다. 이 친구는 보약에서 빠뜨릴 수 없는 약재 자체이다.
소나무처럼 곧고 바르며 톡 쏘는 특유의 향이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말마다 내 집을 방문하여 커피를 마셔 주는 친구이다.
또 한 친구는 경기도에 있는 고향 친구이다.
나에게 어릴 적 떠나온 고향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 친구는 고향집에서 밥 지을 때 나오는 모락모락 피어난 고향의 굴뚝 향이 있다.
경기도 친정집에 가면 그 친구를 만나곤 한다.
어린 시절이 지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만난 우리는 성향이 너무 다른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 사업하는 친구는 고향처럼 품어주는 푸근함이 있다.
어린 시절, 어느 마을에 내가 있었다는 동심을 생생하게 돌아보게 한다.
그 친구를 만나면 약재의 본질이 녹아있는 텁텁하지만, 진한 맛의 보약이 담겨있는 마음속의 사발이 있다.
소꿉놀이하던 시절 이 집 저 집 돌아다녔던 것처럼 내가 올라가면 관광하듯 좋은 곳에
나를 데리고 다녀 준다. 그 친구도 가끔 내려와 놀다 가기도 한다.
나는 요즘엔 집 옆의 자그만 시골교회에 다닌다.
등록은 하였지만 난 성실한 성도는 아니다.
예쁜 시골교회에는 목회하는 친구가 있다.
대학 친구이지만 신학을 하여 목사님이 되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친구를 보면 뿌듯하다.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시는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겸손과 순종을 하며 마음을 살피는 희생적인 친구의 모습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목회하는 친구와 차를 마신다.
섬긴다는 행동은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친구는 나에게 미래를 지향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어둠이 걷히지 않는 아침에 서 있는 나에게 안개를 적시듯 묘한 잦아듦이 있다.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보약을 달이는 은근한 약탕의 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 모두의 화두는 건강한 노후 생활과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인생길을 이야기한다.
조금씩 다가오는 노후의 삶에 동행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지금의 외로움은 견딜만하다.
해가 바뀌며 친구들이 하나둘씩 아프다고 한다.
그 친구들이 나에게 보약인 것처럼 나도 가끔 보약이 되기를 희망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