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딸 앞에서 아빠 이야기는 금기어다.
딸이 힘들 때 “랍스터 먹고 싶어!”라는 말은 “아빠 보고 싶어!.”이다.
명절마다 남편은 딸을 항구에 데려가서 이야기도 들어 주며 싱싱한 랍스터를 사주곤 했다.
그런 아빠를 딸은 무척 좋아했다.
아빠와 반대로 나는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엄마여서 명령과 지시로 딸을 대하였었다.
아빠는 조건 없는 사랑 그 자체였다.
남편은 딸에게 “사랑해”라는 애정 표현을 자주 하였었다.
투박한 말을 하는 나에게는 딸을 부드럽게 대하지 않는다는 말도 자주 하였다.
딸이 외동이라서 그러하였을까?
여린 마음이 아닌 강하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어릴 적 딸의 일기를 보면 엄마에게 쓴 반성문 같다.
나는 딸의 사교육에 욕심도 많았었다.
공부, 독서 영어, 그림, 피아노, 바이올린, 한자. 그리고 컴퓨터 자격증들
딸의 일기에 나오는 낱말이다.
초등 6년을 이 모든 학원 다니라고 하였으니 놀지 못하고 공부가 힘든 점과
엄마가 하라고 해서 열심히 한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초, 중고를 다니는 동안 딸은 착했다.
엄마의 뜻을 따라 모든 것도 최상위권인 만큼 잘했다.
수능 성적은 안 좋았다.
그래서 대학은 상위권 대학을 가지 못하여 재수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딸을 보며 상위권 대학 진학을 못 하여 못마땅함이 내 마음 밑바탕에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딸과의 갈등이 많았다.
어느 날 딸은 말했다“내가 행복하다는데 엄마가 왜 그러냐고”
우리나라는 그렇다. 학벌로 그 사람의 성실함을 평가하고 미래의 삶과 직업이 결정된다.
딸은 정말 모법 적이고 성실하게 살았다.
그러한 노력을 출신 학교로 평가한다는 점이 아쉬움이 많았었다.
직업은 결혼 상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미래의 방향에도 작용하는 것 같았다.
수능 날 컨디션 따라서 1~2점 차이로 이름 없는 대학을 갈 수도 있는데
사회에서는 과정보다는 결과로 사람을 평가한다.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면에는 자식을 잘 키웠다는 말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명문 대학, 대기업 직장, 학벌 있고 능력 있는 결혼 상대자 나는 이 코스를 원했던 것 같다.
그것이 안 된다면 당찬 아이로 자라길 바랐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딸은 ‘마음이 여리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하였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늘 양보하고 수용적인 아이여서 위축되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딸아이의 생각을 별로 묻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앞에서 딸은 스스로 말문을 닫아 버렸다.
사춘기를 넘어서도 딸의 방문은 항상 닫아있었다.
남편은 친구이자 아버지 역할을 잘하였었다.
딸의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한다는 말을 많이 하였었다.
벌써 남편이 떠 난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한 살 위인 남편은 나에게도 삶의 버팀목이었다.
그러한 남편을 보내고 내가 삶의 방향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
딸은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어른처럼 묵묵히 나를 붙잡아 주었다.
지금 조금씩 말할 수 있는 과거도 딸아이가 곁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이 떠난 후, 나는 하루에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딸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때 딸에게 말했었다.
“네가 살고 싶어 할 때까지만 살게.”
그렇게 딸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살피지 않았던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딸에게 늘 마지막을 이야기하였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허수아비였었다.
허수아비는 곡식이 수확할 때까지 그냥 묵묵히 서 있다.
곡식을 지키는 허수아비처럼 남편이 없는 세상은
예전의 온전한 감각과 느낌이 모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의 임무는 곡식이 익을 때까지 딸아이의 옆에 묵묵히 있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딸은 졸업 하고도 내 곁을 떠나지 못하였다.
나의 발걸음과 숨소리조차도 딸은 민감하게 반응하였었다.
어느 날, 딸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못 쉴 것 같다고 울부짖었다.
딸을 나와 격리 시켜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취업은 잘되는 학과라서 윗지방으로 취업이 되었다.
딸을 위한 나의 선택은 기억을 지우는 일이 되었다.
지금, 딸은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전화하면,
지방에 있는 나에게 이사 와서 함께 살자고 올라오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딸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엄마를 돌보려 하지 말고 네가 살고 싶은 날들을 행복하게 꾸려 가라고
지방에 있으면서 힘들면 쉬어가는 장소가 되어 주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였다.
지금의 외로움이 밑거름되어 딸이 온전히 홀로 서는 날.
엄마도 미래를 준비하며 서로 가끔 보자고. 혼자의 삶을 계획하여 본다.
나도 안다. 내가 행복해야 딸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