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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15. 2024

내가 좋아하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개그의 소재로 내가 활용되는 걸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행동으로 웃으며 떠들썩해지는 분위기가 만족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대체로 '우물쭈물'이라는 콘셉트로 연기를 한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다. 


"수호샘, 여기서 뭐해요?"

전 직장에는 중정이 있었다. 사무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면 통유리 너머로 자연과 만날 수 있었다. 교실 크기 만한 이곳에선 방울토마토나 상추, 고추와 같은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중정으로 나가면 하늘을 감상할 수 있었다.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텃밭이 있고, 출입구 한편에 탁자가 있었다. 세월을 고스란히 맞아 부식되어 가던 나무 탁자로는 햇빛이 그대로 내리쬐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히 머무를 수 있었다. 탁자는 일체형으로 의자가 네 방향으로 동그랗게 붙어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마다 이곳을 찾았다. 


"아, 음악 듣고 있었어요"

무더운 여름, 헤드폰을 끼고 뙤약볕을 쬐는 모습이 유난스러워 보였을 테다. 하지만 명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극도의 관심(?)을 보일 게 자명하였으므로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오, 어떤 음악이요~?"

나이스한 사람들은 이쯤에서 물러날 테지만 전 동료들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와 남은 의자를 점령한, 사방을 메운 이들은 헤드폰을 뺏어 들키라도 할 듯 상체를 숙이며 물어본다.

"그냥 이것저것 듣고 있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눈치챈 것일까.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온다.

"수호샘, 우리가 귀찮은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메마른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듯 사정없이 움직이는 나의 두 팔에서 당혹감이 묻어난다.

"우리가 샘 생각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너무하네요~"

여기가 바로 나의 우물쭈물 이 나타날 적절한 타이밍이다.

"이.. 이게.. 저를 둘러싼 지금 이 상황이.. 저를 위한.. 거지요?"

날렵하면서도 큰 몸동작, 당황스러운 표정, 어눌한 말투가 더해지면 충분하다.


에어컨을 포기한 채 땀을 흘리는 동료들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퍼진다. 궁지에 몰린 듯한 처지를 과장하며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순간을 나는 즐긴다. '타격감이 좋다', '반응이 재밌다' 등으로 불리며 마니아층을 두텁게 형성해 가고 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잘 못하는 내가 단숨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대화에 합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큰 파도는 해변 안쪽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묵묵히 밥을 먹던 내가 나를 활용한 개그로 식탁에 거하게 한번 오르면 내 이름이 그날 내내 동료들에게 꾸준히 불린다. 


나는 웃음의 효과를 맹신하는 편이다. 어려서는 만화 '짱구는 못 말려'를 좋아했다.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짱구가 마냥 좋았다. 짱구를 흉내 낼 때 재밌어하는 부모님의 반응은 나로 하여금 우스꽝스러움을 견지하도록 만들었다. 

재미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아플 때도 이어졌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몸이 약한 편이었다. 특히, 저학년 때까지는 차를 탈 때마다 멀미를 하거나 몸살 때문에 누워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등 잔병치레가 잦았다. 몸이 아플 때마다 나는 짱구와 만났다. 비디오테이프를 틀면 짱구가 나타나 나를 포함한 만화 속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어두운 방에서도, 두꺼운 이불로 땀이 쏟아지더라도 이따금 웃음을 터뜨리던 나는 짱구와 머무는 순간이 그저 행복했다. 

웃음이 잦아지고, 길어질수록 아픔으로 인한 고통은 잊혀갔다. 기운이 나고 활력이 돌며 아픈 와중에도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프거나 힘이 들 때 의도적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일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Image by Vidmir Raic from Pixabay


하프마라톤에 참여한 날이었다. 컨디션 난조로 포기할까 고민했던 대회에서 결승 지점을 끝내 통과했다. 희한하게도 달릴수록 승부욕이 생겼다. 지난 대회 기록이 이날의 내가 넘어서고자 했던 경쟁 상대였다. 마침내 8분 정도 기록을 단축해 냈다. 막판에 이를 악물고 무리했더니 다리가 거칠게 후들거렸다. 호흡도 가빴고, 어디라도 좋으니 주저앉고 싶었다. 

생수 한 병을 단번에 들이켜고 보관소에 맡긴 짐을 찾으러 갔다. 배번을 확인받고 가방을 받으려는데 "어, 수호 아니냐?" 내 이름이 나를 정확하게 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 직장에서 만난 주임님이 부스 너머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엇, 주임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 수호야. 나는 여기 자원봉사하러 왔어"

"아아, 그러시군요. 와, 되게 오랜만이에요"

"어, 수호는 오늘 마라톤 뛰러 왔구나?"


주임님은 차량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차를 운전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지만, 차량을 정비하거나 주차장을 관리하는 일도 주임님의 몫이었다. 내가 경험한 주임님은 유쾌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특히, 정의로움을 삶의 중요한 신념으로 여기는 듯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여 상사들과 이따금 긴장 상태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타오르는 주임님을 곁눈질로 곧잘 살피게 되기도 했지만, 직원들에게는 장난스럽고 재미난 어른이었다.

또한 직원들의 이름을 정감 있게 불러주는 어른이기도 했다. 직장에서 퇴사하고 5년 만에 우연히 만났지만 수호라고 부르는 주임님의 말투는 여전히 친근했다. 주임님은 정년퇴직을 한 이후로도 직원들과 여전히 연락한다며 언제 한 번 보자는 인사말을 건넸다. 부르시면 없는 시간을 빼서라도 가겠다고 나는 대답했다.


주임님과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2주가 흘렀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는 꼬박 두 달이 지났다. 서울 생활에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원도에서는 아침마다 골목을 걸었다. 완연한 아침에도 서두르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식당에서도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들도 언제라도 두 발을 땅에 내디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뿐한 걸음과 고른 호흡으로 머무르는 일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이자 전부였다.  

서울은 달랐다. 혼란스러웠다. 경적 소리가 귓가로 쉴 새 없이 꽂혔다. 사람들은 전부 어딘가로 맹렬히 쏘아가는 듯했다. 미친 듯이 깜빡이는 사거리 신호등을 통과하기 위해 분주히 발을 굴려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을 따라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서울은 압력이 강한 도시였다.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직장을 새로 구하는 상황은 나를 처량하게 만들었다. 속한 회사가 없는 상태에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자니 거센 물살을 맨몸으로 파고드려고 애쓰는 것만 같았다. 구직 기간이 늘어갈수록 사회가 나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원도에서 경험한 풍요롭고 충만한 감각은 진즉에 사라졌다. 의욕이 떨어진 채로 보내는 시간이 쌓여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습하고 쨍한 방 안에서 구직 사이트만 하염없이 떠돌았으니까.


혼자서만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지던 어느 오후, 주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수호샘, 주임님에게 연락 왔는데 수호랑 꼭 같이 봐야 한다고 해서 연락드려요"

퇴사하며 끊겼던 주연과의 연락이 주임님으로부터 다시 이어졌다. 

"앗, 지.. 진짜 보는 거군요. 하하.."

문체를 말투처럼 정형화하여 구현해 내기 시작한 나는 당황스러운 투로 대답했다. 

"네, 갑작스러우시겠지만 다음 주 화요일 보기로 했으니 시간 되면 꼭 오세요~"

읽은 상태로 5분간 고민하던 나는 사람과의 교류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에 스스로 동의했다. 

"오, 마침 그날은 시간이 되어요. 퇴근 시간에 맞추어서 잘 찾아갈게요. 화요일에 봐요"


퇴사하며 멈추었던 전 직장의 초침이 다시 움직이는 듯했다. 5년이라는 공백을 단숨에 앞질러 익살스러웠던 그곳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감정적인 상사 때문에 뒤통수에 원형탈모가 생겼던 곳. 원형의 크기가 동전만 하여 스스로 '오백 원'이라는 애칭을 자처했던 곳. 야근이 잦았던 곳. 김수호가 어김없이 남았다며 '수 또 남'이라 불렸던 곳. 상사와의 관계와 과도한 업무로 고통받으면서도 퇴근 후 동료들과 모이던 페리카나가 있었기에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는 곳. 그곳은 나의 우물쭈물의 고향이자 익살스러움이 커나간 곳이다.


"오, 수호~ 어서 와"

"아이고, 오랜만이에요~"

"뭐 하면서 지냈어요? 얼굴 좋아졌네요"


등장만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순수한 관심과 애정을 넘나드는 전 동료들의 눈빛으로 잘 찾아왔다는 인상을 갖는다. 


"수호야,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편하게 시켜"

주임님이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반반 치킨으로 우선 하나 시켜두었으니 참고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주임님이나 흐릿한 동료들의 취향을 떠올려보며 메뉴를 선뜻 고르지 못했다. 머뭇거리다가 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르기 위해 의중을 떠보기로 결심했다. 


"옛날 생각나네요. 예전에 오면 고르곤졸라 피자도 시키고, 낙지볶음도 시키고 그랬는데.."

추억을 파는 척하며 동료들의 반응으로 메뉴를 선별해 볼까 싶었다. 

"아, 그래? 얘들아 수호가 골뱅이 소면이 먹고 싶대. 그거로 하나 시켜줘"

나는 분명 골뱅이의 골자도 꺼낸 적이 없었다. 주임님의 마음에 골뱅이 소면이 선명해서였을까? 수호가 골뱅이 소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며 주연 등에게 시켜달라고 말했다.


전 직장이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부터 주임님은 근무했다고 한다. 이직률이 높은 이곳에서 15년을 근속한 주임님은 그러므로 동료들에게 살아있는 역사와 같다. 주임님은 또한 말하는 걸 좋아했다. 오늘의 대화도 흐르고 흘러 이제는 나의 경험인 것처럼 생생하게 풀 수 있는 옥상에서 상사와 담판을 지었던 썰까지 이어졌다.


"오래 기다리셨죠? 골뱅이 무침 나왔습니다"   

무거워지던 분위기를 골뱅이 무침이 나왔다는 희소식으로 페리카나 사장님이 건져 올렸다. 주연은 자신의 앞에 내려진 골뱅이 무침을 앞접시에 담아 차례대로 전달했다. 배가 불렀던 나는 이어지던 동료들의 말을 집중해서 들으며 젓가락을 들지 않고 있었다. 모이를 쪼듯 고개만 사정없이 움직이는 나를 지켜보던 주임님은 말했다. 

"수호야, 너 골뱅이 무침 먹고 싶다며. 어서 먹어봐~"

대답하기도 전에 웃음부터 새어 나왔다. 진지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던 애가 갑자기 실실 웃으니 동료들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나의 우물쭈물 이 등장할 차례임을 나는 직감했다.  


"저는... 그.. 골뱅이 무침을 먹고 싶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요.."

동료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골뱅이 무침이 맛있다며 호평하던 주임님과 한 젓가락도 먹지 않은 나는 분명 대조적이었다. 한 번의 강한 재미를 남기고 나의 '우물쭈물'은 자연스럽게 퇴장했다. 내가 골뱅이 무침을 먹든 말든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다만, 우물쭈물을 계기로 나는 대화에 더욱 참여하게 되었고 이따금 보였던 익살스러운 행동이 여진처럼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주임님과 나는 청파동을 지나 숙대입구역까지 함께 걸어갔다. 나는 공덕역에서 버스를 타면 집 앞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모처럼 만난 주임님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중간에 환승해야 하는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좌석에 나란히 앉은 나를 보던 주임님은 잘 지내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했다. 수호가 늘 건강했으면 좋겠고, 새로 다니게 될 회사에서 무리하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오래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임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비로소 돌아가는 길에 충만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익살스러움을 마음 놓고 꺼내 보일 수 있는 곳을 편안하다고 느낀다. 내가 짱구처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곳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천진난만한 나의 모습을 수용해 주는 사람들로부터 안정감을 경험한다. 우스꽝스러운 나를 미소로 친절히 맞아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내가 5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이들과 교류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함께 보내게 될 페리카나에서의 시간으로 치유받을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구직을 위해 힘써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밤만큼은, 떠들썩했던 우리의 웃음은 나의 마음에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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