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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28. 2024

잡아본 적은 없지만 알아. 그의 손은 분명 따뜻할 거야

강원도에서 돌아와 세 번째로 만난 이도 전 직장 동료이다. 정확하게는 근무했던 회사로 놀러 갔다. 전 직장은 강원도 한 달 살기를 마침내 실행에 옮기도록 도움(?)을 준 곳이다. 또한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 상담 수련을 처음 시작한 곳이자, 마지막 근무지이기도 하다. 30대에 3년이란 시간 동안 인턴부터 직원까지 두루 경험했고, 사회복지사에 이어 두 번째 직업을 이곳에서 갖게 되었으니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연 곳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부서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러모로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연수도 수진처럼 같은 부서에서 만난 동료이다. 그는 부서의 사정이 좋지 못할 때 입사했다. 연수가 우리 부서로 발을 들이기 전, 세 달간 함께 근무하던 선임이 갑작스레 퇴사했다. 선임이 잔여 휴가를 모조리 사용하며 그의 자리가 공백이 된 기간도 2주 가까이 되었다. 행정 조교나 인턴, 시간제 상담원이 함께 근무한다지만 부서의 굵직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전일제 근로자는 둘 뿐이었다. 선임 그리고 나. 우리는 야근을 미치도록 했다. 상사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남았다. 대부분은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하여 치즈김밥을 각자의 자리에서 먹으며 타자를 치기에 바빴다.

전 직장에서 근무할 당시에 선임과 근무하던 시기가 가장 버겁게 느껴졌다. 야근할 때가 차라리 나았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보너스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다른 부서나 타기관의 공식적인 행정이 모두 멈춘다. 추가적인 요청도, 재촉도 이뤄지지 않는다. 긴장한 상태로 스스로를 다그치던 근무 시간과 달리, 어둠이 잦아든 세상이, 유일하게 빛나는 우리 부서가 아무래도 좋았다.  


"수호샘, 우리 부서도 언젠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류장에 나란히 앉아 버스를 함께 기다리던 선임은 물었다.

"글쎄요.. 하하.. 저는 그냥 내일 걱정뿐인데요..?"

겸연쩍은 듯 웃으며 뒤통수를 긁던 나는 무한한 시제를 내일로 당겨왔다.

"그러게요.. 내일도 무사히 보낼 수 있겠죠?"

긴장과 불안 공동체였던 우리는, 선임은 기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래야지요!"

2년 가까이 근무해 오던 선임과 달리 재입사 한지 세 달째이던 나는 한 뼘 더 희망적으로 대답했다.


선임이 퇴사하기 직전에는 그의 심적인 부담과 고통이 내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평소라면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언성을 높이거나 인상을 찌푸리며 전하는 경우가 잦았다. 선임의 부정적인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말투와 표정을 경험할 때마다 성났지만 참아냈다. 주로 헤드폰을 들고 예술관 벤치로 찾아가 브라이언 이노의 An Ending 같은 앰비언트 뮤직(ambient music)을 들으며 끝내 소화했다. 푸릇한 잔디와 한낮의 햇살, 평온한 멜로디는 무엇이라도 용서할 수 있다는 포용심을 길러주었다. 

고생으로 다져진 우정을 뒤로하고 선임은 떠났다. 그가 남기거나, 해야 할 일까지 처리하며 2주를 보내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았다. 팀장님께 요청하여 면담까지 마쳤다.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 다음 주까지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퇴사와 재직 사이에서 다시 방황할 때, 연수를 처음 만났다. 12월 첫날, 팀장님 너머에서 사무실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던 연수의 첫인사가 여전히 선명하다.


안녕하십니까~


연수의 등장은 출근길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았다. 피로가 덜 가신 상태에서 삼키는 시원한 커피는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텀블러가 흔들릴 때마다 얼음에 부딪치며 내는 소리마저 경쾌하다. 손에 쥔 아침 커피는 그야말로 뭐든 해낼 수도 있겠다는, 해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내가 만난 연수는 자부심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좇는 가치에 대한 믿음이 뚜렷하고, 당당한 태도로 외부에 드러났다. 연수는 스스로 결심하면 전념으로 시도해 보는 경향을 보였다. 옆에서 보았던 그의 손가락은 주저함을 모르는 듯했다. 스트레스가 더해지며 소극적으로 일을 하던, 부서의 유일한 직원이었던 나는 이전 선임에게 하지 못했던 대답을 비로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 부서도 조만간 안정을 찾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연수가 일을 처리하는 속도나 과감성이 내게는 대단해 보였다. 연수의 자리는 증원으로 생겨났다. 새로운 선임은 연수가 일을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채용되었다. 부서 직원은 한 명 늘었고, 회사에서는 추가적인 업무 수행을 당장에 요구하지 않았다. 하던 일을 분장하면 근무 환경이 수월해질 경우만 남았었다. 

부서의 사정은 실제로 나아져갔다. 야근은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긴장한 채로 시간과 다투며 과열되던 사무실 분위기도 차츰 가라앉았다.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퍼지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자율적인 수연과 새로운 선임, 센터에 기여하는 여러 형태의 동료가 만들어가고 경험하던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봄의 따사로움이 이따금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한 겨울 사이에 덩그러니 서서 해가 트기를 간절히 바라는 밤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연수가 입사하기 전에, 새로 생기는 동료가 우리 부서에 차근히 적응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담당하던 업무를 두 명의 것으로 나누어 의견을 낼 때도 담당자의 이름은 비워두었다. 상사와 선임에게는 업무의 시기나 양, 난이도를 고려해서 최대한 형평성 있게 나누어서 자료를 보여드렸다. 또한, 새로운 동료가 들어오면 일이 새롭게 시작되는 3월 전에 그의 의견도 포함하여 다시 업무가 분장되기를 원했다. 


나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업무 환경을 연수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서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매일 발생하고 있었다. 연수가 나서서 급박한 일들을 처리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여전히 도맡아 처리하던 부서의 갖은 일이 삐걱거렸을 테다. 그러나 이전 선임과 근무하던, 부재하던 시기를 온몸으로 견뎌왔던 나는 사실 연수가 내가 담당하던 몇몇 일을 전적으로 맡아주기를 바랐다. 

알고 있었다. 나는 도덕적이라고 일컫는 나만의 기준이 강한 편이다. 군대에서는 전역 전날까지 담당구역을 청소하다가 후배에게 손걸레를 빼앗긴 적이 있다. 3개월 후배인 동우는 빈손을 보며 당황하던 나에게 "형, 이제 그만해도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내적인 의지보다 타인을 의식하며 수행해 왔다. 부대에서는 전역 때까지 손이 트도록 했던 걸레질도, 방에서는 고양이 세수를 하듯 물티슈 한두 장이면 거뜬하다.

행동의 동기가 외부에 있고, 자신의 동기와 일치하지 않을수록 내적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군대는 한 방에서 부대원 열명이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연수와의 상황과는 엄연히 다르다. 다만, 선임으로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나의 신념이 적었거나 없었다면 나는 전역 전날까지 손걸레를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신념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경향이 크다.


나는 내가 하던 일을 맡아달라고 연수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연수가 해야 하므로 지금부터 신경 써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한 주에도 몇 번씩 업무를 넘겨달라고 연수가 오히려 말했지만, 나는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번 떼지 못한 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떼기 어려워진다.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관계에는 적응이라는 성질이 포함되어 있다. 서로를 탐색하는 시기를 거쳐 저마다의 역할이 관계 속에서 점차 명료해진다. 연수와 함께 근무하는 기간이 늘어갈수록 안정을 찾았다고 여겨지는 관계 패턴을 의도적으로 깨며 우리 둘 사이에 긴장을 주는 일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타인을 의식하며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수록 자신의 마음을 놓치게 된다. 인식의 초점이 외부에 있으면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 행동을 반복한다. 자신의 욕구를 외면할수록 지나간 경험을 더욱 움켜쥐려고 한다. 후회되기 때문이다. 혼란이 더해지며 과거의 경험을 쉽게 놓지도, 새로운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경우가 이어진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 때를 생각해 보자. 마트에서 통 크게 장을 보고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운반할 때면 상당한 묵직함을 감당해야 한다. 집에 도착해서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손바닥을 쳐다보면 눌린 자국과 하얗게 변한 피부를 볼 수 있다.

장바구니가 특히 무거워서 손에서 떨어질 것 같다고 인식할수록 우리는 더 강하게 쥐려고 한다. 들이는 힘이 강할수록 손톱이 손바닥을 누르기 때문에 고통받지만 장바구니를 드는 일과 놓칠까 봐 염려하는 마음을 한 가지로 결합하여 받아들인다. 

나는 이따금 장바구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 손톱 흔적이 아로새겨질 때까지 힘껏 움켜쥔다. 집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손바닥을 펴보았을 때 남은 거라곤 흉터 같은 손톱자국뿐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나로서 반응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의 힘을 풀어야 한다. 손바닥으로 자극을 감당하며 원하거나 필요할 때 손을 활짝 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극이 지나간 자리를 스스로 살필 수도 있고 누군가와 손을 맞잡으며 체온이 주는 위로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나와는 다르게 효율성이 높은 연수와 내가 친해진 계기는 짐작건대 꾸준히 보낸 대화의 시간이다. 우리의 자리는 가까웠다. 책상이 하나인 것처럼 밀착되어 있었고, 파티션 같은 제품은 없었다. 초등학생 때 시험을 치르면 책상 중간에 올려놓던 책가방처럼 몇 가지 행정 용품이 우리 사이에 아슬하게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연수는 집에서 포장해 온 베이글을 데워먹었다. 땅콩을 주 재료로 하는 소스를 발라 먹었는데, 빵과 소스의 고소한 향이 점심에 인색한 내게도 허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연수가 접시에 담긴 베이글을 큼지막하게 베어 물때마다 나는 편의점에서 산 페스츄리를 야금야금 먹었다. 우리는 각자의 빵을 삼키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고민하는 부분도 나누고, 우스갯소리를 꺼내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의 삶이 깊이 베어든 경험을 서로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연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경험이 누적될 때마다 내가 느꼈던 연수를 마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잡아본 적은 없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연수의 손은 무척 따뜻하다. 삶이 무망 하다고 느끼고 더 이상 부서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연수가 나타났다. '덤빌 테면 덤벼봐' 하는 태세로 하루씩 충실히 살아가던, 삶을 향한 그의 열정이 꺼져가던 마음에 불씨가 되어주었다.


"떠나보낼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행복해진 듯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네요"


한 달 반 만에 만난 연수는 말했다. 얼굴이 좋아 보이고 말주변도 늘었다고. 연수와 함께 근무한 기간은 4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연수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절망적인 순간에 내밀어준 연수의 손이 있었기에, 그 마음을 잊지 않았기에 전 직장의 문을 나는 다시 두드렸다. '양손은 무겁게, 발길은 가볍게'라는 전 직장을 방문할 때의 예절(?)을 잊지 않고, 그가 좋아할 만한 빵을 두서없이 담았다. 어디서든, 어떤 일을 하든 연수와 나란히 보내던 점심시간이 문득, 문득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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