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결심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제안하지 못하는 내가 모임을 개설하기로 한 것이다. 거절받는 상황에 처하면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 편이다. 거절은 나의 제안에 관한 개인의 의사 전달일 뿐이지만 나는 나를 향한 거절이라고 확대 해석한다. 자존감이 낮은 탓이다. 그래서 모임을 만드는 일을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계획까지 세웠었지만 누군가가 운영하는 모임에 들어가려고 기를 써왔다.
내가 발견한 글쓰기 모임들은 돈을 지불하는 형태가 많았다. 모임에 들어가면 글을 쓰는 구조적인 방법에 대해 배우거나, 글쓰기 활동에 친숙해지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했다. 나의 브런치는 구독자 수에 비해 반응이 적은 편이다. 라이킷에 비해 댓글은 무척 희소하다. 댓글을 남기는 대부분은 나와 관계가 이미 맺어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잘 읽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내 글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 브런치를 찾는 소수의 사람들은 글을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을까?',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글에 대한 생생한 느낌이나 쓰는 과정의 고충을 나누고 싶었던 나는 브런치에 '글쓰기 이웃'을 모집한다는 글을 불쑥 남기게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주말 동안 세 건의 신청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 준 브런치 주소로 들어가 보니 모두 낯익은 닉네임과 프로필 사진을 하고 있었다. 서로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평소에도 글을 잘 읽고 있었고, 글쓰기 이웃이 되고 싶어서 신청했다고 했다. 참여 의사를 밝혀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와 카카오톡 채팅방 링크를 개별적으로 회신했다.
채팅방에서 모인 우리는 브런치 주소를 서로에게 공유했다. 우리는 만나서 대화한 적은 없었으므로 나와 다른 세 명을 알아가기 위해 그들이 남긴 글부터 읽어야 했다. 물론, 이미 구독 중이었으므로 저마다 남긴 글들은 읽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쓰인 글을 그냥 읽을 때와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을 갖고 읽을 때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했다.
A는 관계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났다. 그의 글은 때때로 투박했지만, 그마저도 사람의 정을 느끼게 도왔다. 그의 글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도록 도왔다. 나는 A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위해 마음을 쓰고, 정성스러운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B는 삶에 관한 글을 썼다. 인생을 살아가며 성찰한 내용을 안전하게 표현하는 글이 많았다. 이를 테면, 출근하며 보았던 수족관 속 물고기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보는 접근을 사용하기도 했다. 때로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로, 때로는 미술 작품을 활용하여 삶을 이야기했다. 나는 B가 섬세하고, 차분하며, 조심스러운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C는 여행에 대해 글을 썼다. 여행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깨달은 것에 관해 글을 주로 남겼다. C의 글을 읽으면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감각적으로 글을 재미나게 구성하는 데 탁월하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간 살아오며 우여곡절을 포함한 많은 경험을 해왔다는 사실을 글이 전한다. 나는 C가 마냥 밝지만은 않은, 때로는 우울한, 타인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 또한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서 만난 이들은 글에서 엿본 모습과 사뭇 다른 듯했다. A는 조심스러웠고, B는 활발했으며, C는 한없이 밝았다. 그러나 만남을 거듭할수록 글에서 유추한 모습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브런치에 적힌 글이 서로를 잘 드러내는 것 같다는 의견이 모임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글의 구조적인 치밀함이나 완성도보다 진솔함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글의 배경이 되는 '그 순간'의 감정이 글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썼다. 우리는 모임을 거듭할수록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으로 서로를 대할 필요가 없겠다는 믿음에 도달했다. 모임은 비대면 화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루어졌지만, 만날 때마다 느지막한 밤에 동네 슈퍼 앞에 있는 평상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듯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각 자가 한 주 동안 글을 쓰고, 안 쓰고는 부차적인 목적으로 점차 분류됐다.
"수호야, 너 이번에 D의 결혼식에 가니?"
이제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A에게 연락이 왔다.
"네, 저는 가려고 하는 데 누나는요?"
언젠가부터 말을 놓게 된, A로 일컬어지는 누나에게 물었다.
"어, 나도 가려고 하는데. 그러면 시간 맞춰서 같이 가자"
D의 결혼식을 주제로 A 누나와 연락이 다시 닿았다. 서로의 근황을 간단히 나누고 결혼식 전에 다시 연락을 주고받자고 하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 사이, 나는 강원도 한 달 살기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D의 결혼이 다가와 가는 어느 평일에 사정이 생겨서 결혼식에는 못 가게 되었지만, 오랜만에 만나자는 대화를 나누었다. 약속 날짜와 장소까지 단숨에 정하고, 한낮의 해가 뜨거워가던 5월의 일산에서 A 누나와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고개를 잘 들지 않는다. 좌, 우를 살피거나 바닥을 쳐다보기는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은 드물다. 하늘이 특별하게 날씨의 변화를 보이거나 특수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고개는 쉽게 들어지지 않는다. 인생도 유사하다. 스스로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보다 주어진 삶을 쫓는 느낌이 강하다. 살아온 역사나 주어진 환경 같은 조건들이 의식을 바닥으로 잡아당기고, 왼쪽이나 오른쪽을 살피며 오늘을 살아가기에 분주하도록 만든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푸르게 널린 광활한 공터를 침묵으로, 호흡으로, 알아차림으로 자신을 인식하며 자기 자신에게 묻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 집에서 누나를 만나러 가는 길은 공교롭게도 북쪽으로 향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고개를 뒤로 젖히는 동작에 가깝다. 지하철로 20분 정도만 이동하면 누나와 만나는, 누나가 사는 동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나와 A 누나가 살아가고 있었을 줄이야..'
일 년 이상 모임을 지속하며 A 누나를 향해, 누나와 교류하는 나를 위해 고개를 들 여유를 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와 가족을 제외하고 처음 만난 사람은 재미나게도 모임에서 만난 A 누나였다.
"수호야.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아, 네. 저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누나는요?"
왜소한 체격으로 건강함을 식사량으로 설명하는 습관이 생긴 나는 으레 잘 먹는다고 대답했다.
"어, 나는 요새 책방 차리는 일 때문에 정신없게 지내고 있었어"
각자의 돈가스를 탁자 위에 두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누나는 자신만의 책방을 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책방을 차릴 공간을 알아보느라 특히 분주하게 발품을 팔고 있다고 했다.
"이 동네가 살기에 정말 좋아. 사람도 많이 없고, 여유로워. 근처 하천에서 산책도 할 수 있고"
사람이 붐비지 않아 한적하고, 산책로가 조성되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자신의 동네를 누나는 좋아하는 듯했다. 그리하여 책방도 독서하는 분위기에 걸맞은 동네 주변에 내기 위해 물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는 책방을 낸다면 어떤 책방을 내고 싶어요?"
"나는 행운을 전하는 그런 책방을 만들고 싶어. 무엇보다 사람들이 위안을 얻는 공간이었으면 해"
A 누나가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책방의 이미지는 글에서 전해지는 느낌과 유사했다. 책방을 내는 목적이 금전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편히 머무르며 쉬어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의미가 마음으로 와닿았다. 책꽂이에는 소설이 가득 진열된, 타로 카드를 또한 볼 수 있는 A 누나의 책방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꾸며질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글썽글성'으로 불리는 이 모임에는 A 누나와 C가 나가고, D와 E, F가 새로 들어왔다. 솔직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나눠온 시간만큼,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점에 다시금 주목하며 삶과 글의 균형을 맞추어가고 있다. 서로의 근황을 먼저 나누고 시간을 할애해서 글에 대한 소감이나 의견을 공유하는 식이다. 모임 규칙도 점차 정교화되었다. 모임 빈도도 두 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다섯 명의 모임 구성원 중 두 명 이상이 해당 회차에 참석이 어려울 경우 모임을 한 번 연기하기로 했고, 매달 마지막 모임에서 내달 모임 요일과 시간을 함께 결정하기로 했다.
모임의 첫 시작은 내가 백수일 때였다. 쉬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소속된 곳이 없었으므로 어떤지 모르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이런 나에게 괜찮다고 했다. 잘 쉬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글이 대체로 우울하거나 불안하면서도 온유하고 따스운 내가 잘 느껴진다고 했다. 다시 취업하고, 퇴사하고, 새로이 입사하고, 퇴사를 반복할 때 '글썽글성'이 곁에 있었다.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들었을 때, 상사가 책임을 전가할 때, 삶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고개가 아래로 꺾여갈 때도 '글썽글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글로 만난 사이에서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기도 하고, 자그마한 성취에도 함께 기뻐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강원도 한 달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서울 생활에 적응해 가는 데는 '글썽글성'의 도움이 컸다. A부터 F로 일컬어지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만남과 머무름, 이윽고 하늘을 바라보는 숱한 순간들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지켜주었다. 글로 격리시킨 나의 왜소한 부분까지 받아준 특별한 대상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거절을 받을 만한 상황에 처하면 신중해진다. '내가 괜한 제안을 해서 거절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 검열해 보며 제안하려는 의도를 파악해 본다. 그리고 순수하게 나를 위한, 나로부터 시작한 목적이라는 게 분명해지면 얼마나 뜸을 들이든, 완곡하게 표현하든 말하고 본다.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특히 내 글을 꾸준히 읽어 준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들은 나를 알고, 누구보다 가까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 이들이다. 때로는 나보다 나를 향한 통찰의 안테나가 곤두 선 이들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다. 손을 먼저 내밀고, 맞잡을지 말지를 기다리는 여유도 생겼다. 나의 의사가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누군가의 결정을 존중할 만큼 마음의 주머니가 커졌다. 때로는 누군가가 나와의 만남을 기다린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들이 나를 위하고, 위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가 곁에 머문다는 사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