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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n 20. 2024

조급했구나, 조급한 마음이 들었구나

한 달 만에 조우한 서울의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상가 건물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고, 건물 외관은 누가 더 화려한지 뽐내기라도 하듯 형형색색의 간판들로 번쩍이고 있었다. 거리로는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들어갈 곳을 찾아다니는 흥이 오른 사람, 쏘다니듯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까지 모습도, 사정도 저마다 달라 보였다. 잠시도 한 곳에 시선을 두기 어려웠다. 인적이 드물고 바다가 가까웠던 강원도에서와는 다른, 빼곡하고 번잡한 서울 풍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해 지며 걸음이 점차 빨라지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서울에서의 시간은 분주히 지나갔다. 휘향 찬란한 불빛과 저마다의 이유로 분주한 사람들을 쫓기에 급급했던 그날 밤처럼 나는 조급하게 무언가를 해내려고 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고립된 강원도 생활의 보상을 받으려고 하듯 사람들을 날마다 만났다. 과거와 작은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먼저 연락을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다만 그 정도가 과거보다 급박하여 약속을 잡기 전에 일정표를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여 약속을 잡는 일은 한 달간 지속되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사람들만 만나며 쉬었던 건 아니다. 상담심리사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있는 몇몇 학생상담센터에서 학생들의 심리검사 해석상담을 맡아 줄 일일 상담사를 모집했다. 성남 지역에서 이틀, 천안 지역에서 이틀, 그리고 전 직장에서 사일을 근무했다. 한 달 만에 상담을 하게 되어 부담이 컸다. 비록 일회성으로 근무하는 일이었지만 대학생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고민에 함께 몰두하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나는 상담심리사로서 더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나에게는 아직 나로 살아가기 위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강원도에서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소중하게 여기는 욕구처럼, 나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두루 살폈다. 외부 자극이 적은 상황에서는 나를 우선시하며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는 데 큰 불편감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다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생활공간에서는 행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나에게는 미해결 된 과제들이 많다. 걸핏하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과도하게 잘 해내려고 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에 무리하게 만족시키려는 행동을 한다. 앞으로의 삶에서 직면해 가야 할 나의 왜소한 부분들을 꾸준히 발견하고, 알아주고, 돌보기 위해서는 상담사라는 직업이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고민과 관련한 기질, 환경, 역사, 가치관, 신념, 경험이나 이와 관련한 생각, 감정, 욕구, 소망, 감각 등 다양한 형태의 요인을 함께 살펴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담사는 상담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쌓고, 훈련을 받은 전문가이자 한 개인으로서 상담에 참여하게 된다. 


상담전문가로서 상담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요인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발달시킨다. 어떤 문제도 타인이 직접 해결해 줄 수 없다. 당장에 누군가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유사한 문제에 부딪쳐야 한다. 상담사로 상담을 하다 보면 과거에 골몰했던 일과 유사한 일로 고민하는 내담자를 만나고는 한다. 이들이 나와 성향이나 성장 환경, 조건, 대처 방식 등이 비슷하다고 해서 나의 문제 해결 방식이 그들에게 유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담자의 고민 해소를 돕기 위해 상담자이자 한 개인인 '나'가 협력하며 상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자기 자신부터 '나'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영역이 상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며 상담자로서 상담에 참여할 수 있다.    


앞 단락은 단편적인 예이긴 하지만, 상담은 그러므로 내담자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인간적인 성장을 돕기도 한다. 나는 관계에서 나를 더욱 드러내며 필요한 긴장과 갈등을 경험하기로 했다. 나의 세심한 성격과 그간의 경험, 성찰은 내가 상상하는 파국적인 결말로 나를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경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 자신의 선택으로 조립해 가는 나만의 삶을, 순간들을 친절히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상담자로서 내가 한층 성장할 수 있는 환경으로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주로 지원하는 곳은 마지막 경력지이기도 한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이다. 심리상담사 2급을 취득한 내가 상담 업무를 수행하며 상담자로서 수련하기에 대학교는 보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환경이다. 지난 한 달 동안 두 군데에 이력서를 썼고, 한 군데서 면접을 치렀다.


상담 분야 경력이 다 짧은데, 그만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면접에서 왜 그만두었는지 묻는 면접관을 만났다. 나는 상담 기관에서 1년, 8개월, 7개월 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다. 대학교에서는 상담사를 대부분 최대 2년까지 근무하는 조건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면접관의 질문은 타당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분명 더 근무할 수 있었을 텐데, 이직할수록 근무 기간은 짧아졌으니까. "힘들었었거든요"라고 배짱 있게 대답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그럴싸한 핑계를 지어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직장을 구하는 게 기대만큼 잘 되지 않자 조급함의 덩치가 점차 커져갔다.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언제가 취업하게 되어 일을 시작할 거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간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언젠가 나는 취업한다' 되뇌도 지원해 볼만한 공고가 자주 올라오지 않고, 때때로 떨어지고, 무직인 상태가 이어지자 내가 쓸모없다는 느낌이 일상 전반에서 위축되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를 향한 '보잘것없다'는 자동화된 평가가 알아차려진 것은 전 직장으로 출근하던 네 번째 날이었다. 강원도에 다녀와서 전 직장 동료들과 만나는 순간은 설레고도 즐거웠다. 우여곡절 많았던 시기에 만나 숱한 어려움을 함께 견디어 갔던 이들이기에, 내가 경험했던 고통의 정도가 컸던 만큼 이들을 향한 마음도 특별하다. 직장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며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는 다시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나를 안심시켰다. 


출근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나는 다만 왜인지 모를 불편감을 느꼈다. 출입문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아.. 안녕하세요"라며 전 동료에게 인사를 건넸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 점차 이어졌다. 상담실로 들어가면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깨가 점점 굽어가며 거북목이 되어갔고, 움직이는 동안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깡총걸음으로 다녔다. 

동료들은 나를 보면 반가워했다. 그러한 기색이 행동으로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업하지 못하여 돈을 벌기 위해 전 직장에 기생하는 듯한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취업에 실패해서 전 직장의 도움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내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전 동료들이 '취업에 거듭 실패하는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나를 보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네 번째로 출근하는 날에는 불편감이 아침부터 느껴졌다.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었다. 유튜브를 보다가 일정표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 출근 준비를 했다. 평소의 나라면 부지런히 준비하고 출근했겠지만, 출근하기 싫다는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버스에 타기 싫다는 생각도 했다. 출근하는 길에는 아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센터로 출근해서는 인사를 건네는 내 목소리에서 평소보다 큰 잔떨림이 느껴졌다. 안 떨리는 척하려고 배에 의도적으로 힘을 주었지만, 의식할수록 선명해졌다. 


상담 중간에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상담실 불을 끄고 의자에 바르게 앉았다. 호흡을 느끼며 신체 감각을 알아차리기 위해서였다. 어깨에는 어김없이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발가락은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갖은 생각은 점차 하나로 모였다. '유능하지 못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문득, 전능감이라는 개념이 생각났다. 아이는 태어나서 일정 기간 동안 자기와 세상이 하나인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자기라는 내부 세계와 세상이라는 외부 세계를 동일하다고 느끼는데, 그러므로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자기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갖는다고 한다. 자신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느낌은 자존감 형성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조카들과 놀던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거실에 있는 미끄럼틀 위에 선 우진이는 나를 향해 가상의 마술봉을 휘두르곤 했다.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사용하는 우진이의 마술에 쓰러지는 시늉을 하면 커다란 웃음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언제부턴가 삼촌이 한 번 쓰러지면 자신도 한 번 쓰러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지만, 우진이는 자신의 초인적인 능력이 실현되는 순간을 유독 즐거워했다.

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이 현실과 다르고, 그 격차가 클수록 삶은 불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지원하는 족족 왜 이제 지원했냐는 듯이 회사마다 나를 데려가려고 하거나, 일을 쉬고 있다는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며 함께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하는 순간을 기대할수록,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내가 스스로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몰두하는 내게 낙산 공원으로 나아가던 순간이 이어서 떠올랐다. 첫 직장에 다닐 때였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껴졌고, 관계는 불안정했다. 친한 친구와도 이례적으로 다툼이 일어났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살아갔다. 그러다가 하루는 같은 팀 선배가 나에게 오후 반차를 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내게 이유는 묻지 않았으나 표정이 심각하고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 반차를 무작정 냈다. 일정도, 계획도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길을 걷고 싶어서 곧장 역 바깥으로 나갔다. 

발길이 닿는 대로 펼쳐진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상가 건물이 나란히 마주 보는 좁은 길을 지나, 사람이라고는 운동기구에 오른 백발의 할아버지뿐인 공원을 지나, 계단과 언덕을 오르고, 나를 숨죽이게 만들었던 우울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졌을 때, 단 한 번의 들이마시는 숨, 그 숨이 온몸으로 퍼질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뒤따르며 평온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고통에서 환희로 전환되는 순간마다 걷고 있는 내가 떠오른다. 자연으로 향하는 내가 자연히 떠오르는 이 순간은 자연스러운 '나'와 만나는 극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벅차오름에 머무르며 현재의 나를 보았다. 전 직장에서는 심리검사 해석상담을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해서 내게 연락했다. 나는 내가 원해서 해석상담을 맡겠다고 대답했고, 이것이 내가 이곳 상담실에 앉아 있는 이유이자 전부였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괜스레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외부 상황을 처리하는 내면의 틀이 왜 이렇게 구불구불하게 꼬여있을까?'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하고 인상이 팍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구불거리며 나아가는 길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은 이 길이 내가 살아가는, 살아가고 있는 나만의 삶이자 순간이니까.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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