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판을 추억하다.

by 멈춤의 일기장

샤라락, 샤라락—
조금은 거친 벼 이파리와 이삭이
바람에 스치며 금빛 물결을 이룬다.


새도, 짐승도, 인간도
모두가 탐 내는 태곳적 욕심에 벅찬 일렁임이다.


벼 한 알, 한 알이
마치 오래된 선조들의 노래처럼,
바람결마다 아리랑의 가락이 번져간다.


아주 오래된 공기와 빛, 냄새가
금빛 물결 속에서 섞이고 흔들리며,
시간의 숨결처럼 그 들판 위를 흐른다.


세 번의 계절을 지나고 나서야
다시 그 황금빛 들판을 볼 수 있겠지.


한 번은 혹독한 추위로,
한 번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쉬어 가며,
또 한 번은 모든 것을 벌거벗겨 놓을 계절을 지내야만
가슴 벅찬 금빛 물결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흙빛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노랑으로 변해가는 들판 위로
햇살은 부드럽게 쏟아지고,
때론 천둥과 번개가 찾아와 겁을 주겠지.


비가 내려 들판을 모조리 삼켜버릴 때도 있겠지만,
벼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고,
결국 들판은 다시 황금빛으로 물들 거야.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그 들판은
내 기억의 수레바퀴 속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그 속의 풍경은 세월이 흘러도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여전한 그 빛, 그 소리, 그 공기, 그리고 냄새까지 —
모두가 시간 속에 흩어져 있다.


단순하고 따뜻한 풍경,
느리고 느린 시간의 흐름.
바람결에 모든 것이 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그리고 그 속에 조용히 숨어 있는 따뜻한 느낌이,
금빛 들판 위에서
햇살을 온몸으로 받던 그 순간처럼,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쉰다.


기다림을 아는 마음이었다.
모든 것이 제때 익어가듯,
나의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그 들판을 걷는다.
시간을 건너 다시 그곳으로,
그 금빛 들판으로.


그리고 찾아온 아련함 —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아련함 속에서
피어오른다. 미소가 피어오른다.


햇살에 반사된 금빛 속에서,
또 한 번 나의 계절은 익어갈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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