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로 돌아가는 길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시리즈 9 (15)

by 이민자의 부엌


이민은 단순히 국경을 건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이 의지하던 좌표가 통째로 이동하는 일이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던 순간, 나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몸은 한국을 떠나 캐나다 땅 위에 섰지만, 내 안의 계절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몇 번의 겨울과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떠난 것은 몸이었고, 남겨진 것은 말투와 표정,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는 감각이었다는 것을.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공간의 리듬을 읽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사람들의 말은 막힘없이 이어졌지만, 나는 그 의미를 속으로 곱씹으며 한 박자 늦게 따라가야 했다. 웃음이 번진 자리에서 잠시 멈칫한 채 주변의 표정을 살피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애들학교 모임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 오간 대화를 다시 꺼내 정리하곤 했다. 내가 놓친 것은 없었는지, 내가 괜히 과하게 긴장한 것은 아니었는지.


어떤 날은 조용히 잘 섞여 있었고,
어떤 날은 스스로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그 감정은 서러움이라기보다 어딘가 기울어진 채 서 있는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종종 나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이 공간 속에서 얼마나 편안한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나를 너무 서둘러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에서의 나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다. 누군가 말끝을 흐리면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습관이 있었고, 침묵이 길어져도 불안하지 않았다. 설명이 길지 않아도 통했고, 관계 안에서 나라는 사람은 이미 전제된 존재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는 나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고,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야 했다. 내 삶의 배경을 꺼내어 맥락을 덧붙이는 일은 단순한 소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다시 세우는 작업에 가까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배웠다.
정체성은 단단히 굳어 있는 돌이 아니라, 빛의 방향에 따라 결을 드러내는 유리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낯선 환경은 나를 질문 받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결국에는 질문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은가.
나는 어디에서 타협하고, 어디에서는 끝까지 남을 것인가.


그 질문들은 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 흔들림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영하 삼십 도의 겨울, 교실로 향하던 날이 아직도 또렷하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 안이 얼어붙을 것 같던 공기. 낯선 억양이 복도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 앉아 노트를 펼치던 첫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발표 순서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빨라졌다. 문장을 준비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또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기대어 한참을 가만히 있었던 날도 있다.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 질문은 두려움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문득 알았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틀려도 괜찮다고, 느려도 괜찮다고, 배움 앞에서는 나이도 경력도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기 시작했다.


교실 안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숨 쉬게 했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며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민을 막 시작한 사람, 상실 이후의 시간을 건너는 사람, 노년의 경계에 선 사람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누군가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통과했다는 증거라는 것을.


어느 날 팀 회의에서 준비한 의견을 말하려다 잠시 숨이 막혔다. 빠르게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순간적으로 공백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그 자리를 자책으로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


문장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나의 시간은 진짜였다. 회의가 끝난 뒤 한 동료가 다가와 말했다.


“당신의 경험이 우리에게 다른 시선을 열어주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비로소 확신했다.
나의 속도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리듬이었음을.


한국에서 나는 사람 사이의 온도를 읽는 법을 배웠다. 말하지 않은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감각, 관계가 오래 가는 이유를 몸으로 익혔다.


이곳에서는 또 다른 것을 배웠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사실, 나를 지키는 경계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


처음에는 두 세계가 서로를 밀어내는 듯했다. 하나를 붙들면 다른 하나가 멀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둘을 함께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민의 여정은 멀리 떠나는 길이 아니라,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만 직선이 아니라 여러 번 굽이치는 길이었다. 그 굽이마다 나는 조금씩 나를 잃었고, 또다시 찾았다.


이민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다.


나는 이제 속도보다 방향을 본다.
남의 기준보다 내 마음의 결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안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두렵지 않다.


두려움 속에서도 걸어왔고,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았고, 낯선 풍경 속에서도 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서 갈라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두 세계를 잇는 사람이다.


오늘도 토론토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겨울의 빛은 차갑고 선명하고, 여름의 노을은 늦은 시간까지 오래 머문다. 그 하늘 아래에서 나는 안다.


이곳이 나의 자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시리즈를 함께 걸어와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시선 덕분에 나의 이야기는 더 깊어졌고, 질문은 더 넓어졌다.


이제 다음 시리즈 〈나이듦의 온도〉에서 또 다른 삶의 결을 나누려 한다. 어쩌면 나이듦 역시 하나의 이민일지 모른다. 익숙하던 몸과 마음을 떠나 새로운 시간으로 건너가는 일.


우리는 그 여정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새로 품게 될까.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어디쯤에서,
어떤 모습의 자신을 만나고 있는가.


낯선 땅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나는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며 더 깊이 뿌리내린다. 돌아온 곳은 처음과 같지 않지만, 지금 이 자리가 가장 진실한 자리임을 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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