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어둠을 들추고 어슴푸레 웃고 있다.
도둑처럼 몰래 들여다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버지다.
멀리 여명이 밝아오자
빠르게 태양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아버지도 태양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공중으로 흩어지는
화장터 연기일 뿐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도로를 달린다.
밤이 내려온 듯 구름은 까맣고 낮아 그 속으로
돌진하는 느낌이다.
저 구름은 무슨 짐이 그리 많아서
날지 못하고 자꾸 주저앉을까?
화장터 연기는 하나로 모여 까만 구름에
짐을 더한다.
푸르렀던 나무들은
어느새 눈부신 단풍 빛깔을 쏘아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앙상한 뼈다귀를 드러낼 것이다.
나의 팔다리가 바짝 말라가는 것을 보니
나도 단풍 옷을 입었나 보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아버지
그렇게 쌓인 무거움은 내 가슴에 짐이 되겠지.
아버지로서 바라는 바는 아닐 테지만
나 또한 내 아들의 짐이 될 것이다.
꽤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꺼지듯, 그렇게 훅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서 아버지를 좀 편하게 해드려야지.'
그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돈은 생각대로 쉽게 모이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아버지는 떠나갔습니다.
요즘은 부모님을 모신다는 생각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부모님들도 짐이 되기 싫어하십니다.
그저 성인이 된 자식이 강으로, 바다로, 자유롭게 흘러가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짐은 경제적인 게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마음에 쌓이는 짐, 말입니다.
나는 돈을 모은다는 핑계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이 바란 건 아주 조그마한 관심과 사랑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저 가끔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내 아들을 봅니다.
작고 순한 눈망울로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나에게 이것저것 바라기만 합니다.
나는 돈을 쥐여 주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짐이 되지 말아야지.'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마음의 짐은 위에서 아래로 대대손손 전해진다는 것을.
그것은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 아들에게도 해주지 못한 것들이 쌓여갈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꺼지는 촛불처럼 사라집니다.
그제야 깨닫게 되겠죠.
필요했던 건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