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의 코

얼마 지나지 않아 피노키오는 벌떡 일어났다.

불덩이 같던 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싹 가시고, 기운이 뿜뿜 솟아났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방 안을 뱅글뱅글 돌며 춤을 췄다.

탭댄스를 추다 말고 스핀, 제자리 점프, 마치 오늘이 생일이라도 되는 양 신나게 날뛰었다.

그 모습을 본 공주는 살짝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런데 공주는 겉보기와 달리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실은 꽤 유명한 과학자였고, 피노키오의 인공지능을 직접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는 공감의 마법을 통해 전 우주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고,

거짓말은 0.1초 만에 간파하는 능력까지 있었다.

피노키오가 힘 조절을 못 하고 뛰어다니자, 공주가 말했다.
“어때? 약 먹고 나니까 살 것 같지?”

“진짜 좋아요! 지금 느낌은… 거의 리셋한 기분이에요!”

“근데 왜 그렇게 약 먹기 싫어했어?”

“그게요… 애들은 원래 그래요. 아픈 것도 무섭지만, 약은 더 무서워요. 뭔가 이상한 맛이 나잖아요.”

“이런 어이없는 녀석 같으니. 약을 제때 먹으면 큰 병도 낫고, 운이 좋으면 목숨도 구할 수 있는 거야.”

“이젠 안 그럴게요. 어깨에 관을 멘 까마귀를 상상하니까… 그냥 노란색 약이라도 당장 먹을 수 있어요.”

공주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자, 그럼, 이제 이리 와서 말해 보렴.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강도들한테 쫓기게 된 거야?”

피노키오는 조금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실룩였다.

“그러니까 학교에 가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멀리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궁금해서 가까이 가봤죠. 그런데 세상에나!

‘기긱기긱’이라는 로봇 아이돌 공연을 한다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너무 보고 싶어서, 표부터 끊고 무작정 달려갔어요!”

피노키오는 신나게 얘기했다.

하지만 공주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 공연, 입장료 만만치 않던데… 돈은 어디서 났니?”

피노키오는 눈을 살짝 피하며 중얼거렸다.
“책을… 팔았어요.”

“무슨 책?”

“아빠가… 학교에서 공부하라고 사 주신 책이요. 그런데…”

“그런데 뭐? 왜 그렇게 슬퍼하니?”

“그런데… 그 책은요… 아빠가 다리를 하나 팔아서 사 준 거였어요. 흑흑…”

“잠깐만, 그럼, 아빠의 다리와 맞바꾼 소중한 책을 팔아서 아이돌 공연을 보러 갔다고?”

“으아앙! 맞아요! 나 정말 못된 자식이죠? 공주 누나, 저 진짜 불효자예요!”

공주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된 거야?”

피노키오는 손을 번쩍 들며 열변을 토했다.

“무대 위에서 ‘기긱기긱’과 함께 춤을 췄어요! 완전 대환장 댄스파티였죠.

그런데 매니저가 저 때문에 공연 망쳤다고, 절 의자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저 정말 열심히 췄는데! 이게 말이 돼요?

그쵸? 공주 누나도 그렇다고 해주세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울면서 빌었죠. 진짜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그랬더니 매니저가 의자로 만드는 대신 극단에서 알바를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의상도 나르고 조명도 들고 하다가… 매니저의 딸, 귀여운 팬을 구해줬어요!

우연히 무대 장치가 쓰러질 뻔했거든요.

그 일로 매니저가 감동해서 코인 열 개를 주셨어요!”

“오… 코인을 열 개나?”

“네! 그런데 아빠가 보고 싶어서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던 중에 두건과 마스크를 만났어요.

둘이 ‘코인을 백배로 만들어 주는 요술 마을’이 있다고 한 거예요!

나는 코인을 백배로 만들어서 아빠의 다리를 다시 찾아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따라갔죠.

근데 요술 마을 가는 길에… 두건이랑 마스크가 갑자기 사라지고… 강도들한테 딱 걸린 거예요!”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 코인 열 개는 어디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