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by 이진무

들판은 잠든 것처럼 조용했다.

바람은 숨을 죽인 채 낮게 스치고, 풀잎은 늑대들의 발아래 조용히 몸을 기울였다.


피노키오는 묵묵히 걸었다.

대장의 말대로 정말 이상할 만큼 평화로웠다.

토끼도, 다람쥐도, 잠자리 한 마리조차 없었다.


그 평화로움이 점점 더 낯설게 느껴질 즈음, 피노키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 좋은데… 너무 조용한 거 아냐? 심심해 죽겠네. 동물들하고 수다를 떨면서 가고 싶은데…”


늑대 무리들은 얼마나 무뚝뚝한지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피노키오가 무슨 농담을 해도 “…”이었다.


늑대 간에도 사인만 주고받고, 대장의 말 한마디면 모두 칼같이 움직였다.

피노키오 입장에서는 이만큼 답답한 동행도 없었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도 뭔가,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피노키오가 열세 번째 덫을 망가뜨렸을 때였다.


바람이 바뀌었다.

처음엔 그냥 바람인 줄 알았는데, 뒷덜미가 스르르 서늘해졌다.

누군가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늑대 대장이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바람이 바뀌었어. 피 냄새랑 철 냄새가 섞였어.”


피노키오는 오싹했다.

“철 냄새?”

“총 냄새. 그리고 사냥꾼 둘.”


이 말에 피노키오는 뒤를 홱 돌아봤다.

먼 들판 끝자락, 두 개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총을 든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은 빠르지 않았지만, 정확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목적지인 산은 나무들을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고 있었다.

높고 웅장한 산. 그곳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늑대들은 뒤처져서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가 모이고 있었다.

피노키오가 이유를 알 수 없어 늑대 대장에게 물었다.

“늑대 대장! 쟤들 왜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우리 흔적을 지우고 길을 어지럽혀서 사냥꾼들에게 혼란을 주려는 거야.”


“그렇구나. 잘돼야 할 텐데…”


“그래. 그런데 그게 별 효과가 없었나 보네.”


사냥꾼 피노키오.jpeg


어느새 사냥꾼들의 모습이 정확히 시야에 잡혔다.

그들의 어깨에는 낡은 가죽끈으로 묶인 소총이 걸려 있었고,

위장 무늬 옷은 주변 풍경과 어울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거친 들판을 걷는 그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럽지만 흔들림이 없었으며,

햇볕에 달궈진 얼굴에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그들은 조금 숙인 자세로 주변을 살피며,

마치 들판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예민하게 반응했다.


늑대 대장은 입가를 찡그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순간, 모두 흩어져 수풀 속에 숨었다.

미리 약속한 행동인듯했다.


피노키오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느새 자신과 늑대 대장만 남아 있었다.

“잠깐, 다 어디 간 거야?”


늑대 대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우릴 미끼로 남겨두고, 나머진 숨어 있는 거야. 저들이 방심하게 해야 해.”


피노키오의 심장은 두 배로 뛰었다.

‘아니, 나를 미끼로 둔다고? 대장이 있는 게 다행이지만, 둘 다 총에 맞으면 끝장 아닌가?’

“야… 혹시 작전 이름이 ‘피노키오 버리기’ 그런 거 아니지?”


늑대 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약간 웃은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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