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 한 첫 번째 장면

감정은 흘러가야 한다.

by 미닝풀

‘참는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나를 더 조용히 참고, 더 오래 견디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장녀였다.

동생의 투정은 귀여움이 되었지만 내 어리광은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멈춰야 했다.


“첫째가 야무지네.”

“동생도 잘 챙기네.”


칭찬의 말들은 달콤해서 더 깊이 삼키고 싶었고, 그 달콤함 속에서 내가 조금씩 닳아가는 소리는 유난히 듣기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나는 ‘참는 것’이 좋은 사람의 특징처럼 자연스럽게 굳어갔다.


그래서 감정을 참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슬퍼도, 화가 나도, 억울해도 좋은 사람은 웃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나는 웃으며 지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이 더 안전하다고 여겼고, 관계가 삐걱대는 순간에는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그게 모두가 편안해지는 방법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혼자 마주한 나는 달랐다. 겉의 웃음 뒤에서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눈물이 나오는 순간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조차 숨었다.

울음은 약함, 부끄러움, 부족함의 증명이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는 집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수도꼭지 물을 세차게 틀어놓고 그 아래에서 몰래 울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울음을 삼키는 아들의 등을 보았다.

장남이라는 이름, 첫째라는 역할, 남자아이니까 더 참아야 한다는 무언의 기준.

그 모든 무게는 내 과거와 겹쳐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나처럼 아이도 자신의 울음을 틀어막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뒤돌아 있는 아이.

그 작은 어깨가 얼마나 무거워 보였는지 모른다.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었는데 끝까지 울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안아주자 그제야 오래 잠겨 있던 울음이 터졌다. 아프고 서러운 소리가 방 안 가득 번졌다.

그 울음은 아들의 울음소리이면서 동시에 나의 오래된 옛날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날 이후 알게 되었다.

참는 것은 결국 어느 시점에서 터지고 만다는 것을.

상처가 생겼을 때 바로 치유해야 새살이 돋듯 감정도 그때그때 흘려보내야 건강하게 회복된다는 것을.

감정을 표현하는 작은 용기 하나가 자신을 건강하게 지키는 힘이 된다는 걸 조금씩, 아주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울음이 들킬까 두려워 입술을 깨물며 흘리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울음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아직도 따뜻하고, 건강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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