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집을 나서면
겨울임을 느낄 수 있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쌀쌀함을 넘어서는 날카로움이 스칠 때도 있지만,
눅눅했던 더위보다 훨씬 나은 계절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추운 날이 좋다.
차가운 바람이 귀를 시리게 만들고,
빨개진 귀를 감싸던 손마저 얼어붙는-
그런 날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아니면, 비라도 내려
집이 문득 어둡게 느껴지는 날에
괜히 불을 더 켜기보다 조용히 앉거나 누워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고 싶다.
그러다 비가 그치고,
더 차갑고 맑아진 공기를 맞으며
산책할 수 있는 날이라도 좋겠다.
매일 걷던 길도 날씨의 변화에 맞춰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비가 온 날이라면 이슬방울에 비친 빛에
작은 것들도 찬란함이 감도는 걸 볼 수 있고,
바람이 부는 날이라면
그저 매달려있던 것과 이미 떨어져 버린 것들이
가리지 않고 함께 춤을 추고 있을 거다.
사소하다며 관심없이 지나간 사이,
많은 것들은 조용히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중 뇌리에 남는 건 극히 일부분뿐이다.
나는 종종 그 ‘남지 않는 것들'마저 붙잡고 싶어진다.
잊혀지는 순간에서의 나를 돌아보고,
스쳐간 기억 속의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이로 떠오르기를 바라면서.
무색하던 나에게도
찬란한 이슬방울이 살며시 맺혀 있었음을,
부는 바람이 나에게도 닿아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