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설교

by Eian Lim

11. 설교




어깨의 붕대는 양이 많았다. 무거울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푼다면 목에 감을 정도는 돼 보였다. 예지와는 다르게, 그녀는 이미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녀는 이미 괴물이라고, 난 확신하기 때문이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선 미약한 떨림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녀는 아직 정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부터 내가 벌일 일들은 결코 용인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옳은 일인 걸까. 머릿속이 혼잡해진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꿈은 모두 사실이었고, 위험해진다는 경고로 이어졌다는 걸 기억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난 내가 보았던 꿈을 신뢰한다.

그녀는 언젠가 괴물이 될 거다. 그녀는 반드시 괴물이 될 거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위협을 제거해야만 한다.

난 그런 확신을 품고, 문고리를 돌렸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초점 없는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응? 내게 용건이 있는 거야?" 그녀는 물었다. 그녀의 눈에선 반짝임조차 볼 수 없었다.

예지라는 이름의 명분을 뚫고, 인간의 본성이 튀어나온다. 난 그녀 옆에 앉았다.

"...요즘 어때? 힘들진 않고?" 난 그리 물었다. 고민 끝에 그녀는 읊조렸다.

"..솔직히, 힘들어. T도, M도 모두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어. 그거 알아? 말한 적은 없었지만, 과거 난 내 아이를 수술하다 실패해서 작별하게 되었어. 아직도 그때가 생생해. 하지만, 그것만은 확실해. 내 실수였고, 그걸 걔도 알기에, 내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 하지만, 그때와는 좀 달라. 지금은 그냥.. 내가 뭘 하는지조차 모르겠어. 내가 이러고만 있는 게, 무력하게만 있어야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 그냥,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게 다소 힘들어."

처음으로 그녀는 모성애를 거두고 감정을 드러냈다. 진심 어린 고백 앞에선, 안타까운 마음이 드리워질 뿐이다.

"그냥, 요즘 컨디션도 안 좋고.."

컨디션.

"컨디션이 안 좋다고?"

그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응, 며칠간 밖에만 있었으니, 감기에 걸린 거 같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난 선택해야만 한다.

"미안하지만, J. 컨디션이 안 좋다는 건 뭘 의미하는지.. 너도 잘 알 텐데..?"

"어? D? 잠시만, 지금.. 뭐..하는 거야?"

내 팔의 붕대가 점점 얇아져 간다. 조금씩 풀어지는 붕대와 함께, 그녀와 나의 거리도 좁혀진다.

"잠깐.. 아니야아니야.. 컨디션? 괜찮은 거 같아, 잘못 말한 거야! 계속 밖에 있으면..그럴 거 같다는 거였지.. 그치! 그런거지!"

"T와 M 둘 다 같은 증세를 보였어. 너도 똑같은 거야."

"아니야! 나 지금 되게 멀쩡해! 봐!" 그녀는 똑바로 서며 외쳤다. "보여? 난 그들처럼 못 걸을 정도가 아니라고, 괜찮다니까?"

"이미 난 마음을 다잡았어. 자, 빠르게 끝내줄게."

"아.. 아... 이럴 순 없어.." 그녀는 더 이상 서 있지 않았다. 점점 그녀의 몸은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리 와. 어딜가려고." 난 말했다.

"으아... 안돼..!" 그녀의 마음은 뛰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J!! 어디가!" 난 천천히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2층을 지나, 3층까지.

3층까지 올라갔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지금껏 꿈에서 그들의 미래를 보았어 J. 그리고, 그 꿈엔 너도 나오더군." 난 이미 그녀가 어딨는지 안다. 내 육감이 정보를 말하고 있다. 창고에 있다.

드르륵!!! "여기다!" 난 외쳤다. 하지만, 준비하고 있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내 얼굴로 수많은 유리 조각이 날아왔고, J가 도망치는걸 바라만 보며 난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쿵!.. 쿵쿵쿵쿵!!!

...

뭐지? 비명?

다시 정신을 되찾은 난 1층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이미 1층까지 굴러 내려간 상태였다. 그녀의 머리에선 붉은 피가 분출되고 있었지만, 팔만큼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쓸고 지나간 바닥은 붉게 물들었고, 그 혈흔은 뒷문까지 이어졌다.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혈흔을 따라갔다. 오늘따라 계단에서의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내 행동을 밀어주는 느낌까지 든다. 비록 '총'이 없다는 사실이 다소 마음에 걸리지만, 그 정도의 문제는 상관없을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은 날 1층까지 인도했고, 뒷문의 앞에서 우리는 마주했다.

"아니야.. 이래선 안되는 거라고.. 아아.. 오지 마.. 오지 마!!..."

발걸음이 그녀에게 향할수록, 그녀와의 거리는 멀어져만 간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팔로 땅을 긁으며 이동하는 J의 손은 문고리로 향한다. 떨리며 올라간 그녀의 팔은 문고리가 아닌 나의 손과 함께했다.

"아아아...아아아....아..."

이미 내 손에 들어온 팔은 점점 무거워졌다. 더 이상 힘을 주지 않으려는, 모든 걸 놓아버린 여인의 얼굴은 초점 없는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D.. 왜.. 왜 이러는 거야?"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팔은 붉게 물들었고, 바닥의 나무조각들이 박혀있는 상태였다. 마치 고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 쉰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야 J."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서. '집'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

"내 눈을 봐줘..! 제발.. 어째서 내가 괴물이 된거라 생각하는 건데.. 왜.."

유리로 들어오는 달빛은 붉었다. 살아생전 보지 못한 강렬한 선홍빛의 달은 뒷문의 유리를 통해 온 집을 붉게 물들었다.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이라는 듯 맹렬히 날 바라보는 눈에는 달에서 온 것인지 그녀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모를 핏빛만이 잔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내 손을 목으로 이끌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팔의 붕대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팔에 혈색이 돋기 시작했다. 한결 가뿐해진 내 팔은 그녀의 목을 옥죄는 힘을 주었다. 내 팔에 묶여있던 붕대는 그녀의 목으로 점차 옮겨갔고,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선 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웅얼거리는듯한 목소리는 붉게 물든 방에 울려 퍼졌지만, 더 이상 이를 들어줄 이는 없었다.

이젠 알아들을 수 없게 돼버린 비명 속으로는 잃어버린 희망에 대한 갈망이 드러났고, 아름다운 핏빛 아래의 우리는 함께 붉었다. 이제 팔의 붕대가 거의 남지 않았다. 마치 막혀있던 무언가를 치료받은 듯 완전히 정상적인 팔로 돌아갔으며, 꽉 막힌 그 무언가는 이젠 그녀의 몸으로 향했다. 마치 하나의 와인과 같은 색이 돼버린 붕대의 중심에선, 그녀만의 힘없는 최후통첩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넌...잘못 보고.....있...."

잘못?

아니, 난 옳았어.

분명 옳았어.

주저하던 팔엔 힘이 들어가고,

묶여있던 그것의 힘이 빠져간다.

줄이 팽팽해져 갈수록,

그것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간다.


이제 내 앞엔 싸늘해져 버린 설교자만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


끼이익...


"...J?"

...? 분명 오늘은 돌아오지 않는다 말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라.. D."

중천에 뜬 달빛 아래, 2명과 한 구의 무리는 서로를 마주했다.

"정말 모르겠어?"

"질문으로 답하지 말고 대답해라!! 왜지?! 뭘 위해서였지?!!"

"...

'평화'."

"... 하..."

"봐도 모르겠나? 난 '평화'를 지킨 거다. 우리의, '집'의 평화를."

"닥치고 상황을 설명해!!!!!!!!"

그의 주머니에선 검은색의 무기가 번쩍였다.

...잠시만, 저건 '총'?

"하하.. 하하하하하!!! 부대에 다녀온 건가? 찬란했던 과거가 그리웠던 건가 K?"

"그래, 더 이상 불안함을 감추질 못하겠더군,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네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 무척이나 두려웠다!"

"정말이지 멍청하군, 네가 그 총 하나를 찾으러 간 찰나에 그녀는 괴물이 될 뻔했어. 너가 없는 새에 무슨 일이 생겼을 줄은 생각 못 하는 건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저지른 일에 대해 나무랄..."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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