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확신

by Eian Lim

10. 확신




싸늘한 식사로 허기를 해결했다. 이전처럼 환각이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저,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스파게티를 먹었을 뿐이다. 맛없는 음식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고, 그 음식은 쓰레기통으로 처분되었다.

M 사후 며칠 동안, 내 눈에 K가 보이는 일은 없었다. 날 피하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다행이었다. 나도 껄끄러운 만남은 사양이었다. J는 요리를 포기했다. 정확히는 '식사' 자체를 포기한 것 같았다. 의미 없는 미소만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채, 그녀는 집을 나갔다 들어오기만을 반복했다. 처음엔 1시간 정도, 이후엔 거의 하루 종일 나가 있었다.

내 방의 창문은 결국 깨져버리고 말았다. 부서진 조각들에선 꿈에서의 아름다운 불빛 따윈 나오지 않았다. 그저 거슬리는 물건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렇게, 틀도, 유리도 없는 벽의 구멍에선 바깥의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전에 맡아본 풀 내음이 날 자극했고, 난 '추모'라는 구실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갔다.

이전보다는 날씨가 추워졌다. 전엔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던 날씨가, 지금은 한기가 되어 폐를 꿰뚫는다. 차가운 공기는 내 정신을 맑게 했지만, 무덤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녀의 정신마저 치유하지는 못한 듯 보였다.

"미안해 T, 널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해봤어. 약도 부어봤고, 붕대도 감아봤어. 그런데 하나도 성공하는 게 없더라? M 너도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 너흰 왜 일어나지 않아? 왜 흙 속에 파묻혀서 나오지 못하는 거야? 왜? 우리가 싫어졌어? 내가 미워졌어? 빨리 나와서 같이 이야기하자. 과거의 추억들을, 우리가 보낼 미래들을. 미안해. 살리지 못해서 미안해. 치료를 하지 못해서 미안해. 죽음을 막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J는 무덤에서 끝없이 무언갈 쏟아내는 중이었다. 죄책감인지 자책인지 모를 무언가를, 그녀는 입이 마르다 못해 찢어질 듯이 얘기하고 있었다. 분명 며칠 동안 이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 D다.. 헤헤.." 날 보고는 미소 지었다. "다치지 마. 그 누구도 다쳐선 안돼. 죽지 마. 죽어서도 안돼. 우린 함께니까. 함께여야 하니까." 그녀는 나에게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이미 치료된 내 왼팔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J."

"왜 D?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아.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

"헤헤.. 어쩌면.. 살릴 수 있을 거야. 이번엔 감기약을 부어볼게. 차도가 있다면 너에게도 말해줄게. 헤헤.."

그녀의 정신은 부서졌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며 타이르던, 우리 모두를 신경 써주던 그녀의 신념은 벌써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성애는 승화되어 죽은 자가 돌아올 거라는 마음으로, 그를 실현시키려는 희망적인 기행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녀와의 이성적인 대화는 불가능해 보였다.

"곧 해가 질 테니 어서 들어오도록 해. 해가 진다면 더 추워질 거야." 나는 말했다.

"조금만 더 시도해 보고 돌아갈게. 난 걱정하지 말고.."

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집으로 들어왔다. J와 대화하는 건 벽과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들어오자, 차가운 온기가 느껴진다. 미약하게 남아있는 화목한 분위기, 그것은 날 안정되게 만들었다. 난 소파에 앉았다. 켜지지 않을 TV를 바라보며 안테나가 작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가 더 화목해졌을까, 상상하며 말이다. 희미한 온기 속으로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난 그렇게 내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오자, 거실과는 다른 삭막함이 느껴진다. 외로운 한기가 내 방에 감돌았고, 난 근거를 몰랐다.

아, 이유를 알 것 같다.

...

이젠 구멍밖에 남지 않은 창문에 테이프를 붙였다. 더 이상 찬 공기가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난 한층 따뜻해진 방에서 잠을 청했다.

이젠 꿈에서 안개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꿈은 선명히 나에게 다가온다. 이젠, 그저 호기심만이 팽배하는 꿈속에서 난 탐색을 시작한다.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내가 붙여놓은 테이프마저 떼어놓았고, 내 방엔 매섭게 돌풍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걱정보단 호기심이 앞섰다. 자연은 인간의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다. 불어오는 바람에 떠밀리며, 난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더 이상 3층도, 2층도 먼저 볼 필요는 없다. 난 즉시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자, 누군가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이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나에겐 기다림에 응해줄 필요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가녀린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입이 열리고, 뭐라 중얼거리지만 귀에 꽂히지 않는다. 잠시 후 그 사람은 나를 피해 도망쳤다. 우린 함께 이 집을 돌아다녔다. 위로 점점 올라가며, 기대 또한 고조된다.

궁지에 몰렸다. 난 점점 다가간다. 그것을 향해 한발, 한발, 가까워진다. 하지만, 빠른 사냥감은 포식자보다 빠르게 도망친다. 그것은 2개의 층을 한 번에 내려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 나는 그것에게 점점 다가갔다.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사냥감은 절망감에 몸을 부르짖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탕!!!!

"..."

해가 뜨고 있었다. 잠에서 깬 것이다.

영문 모를 큰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그리고, 그 소리는 귀에 익었다.

"총성." 게임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그 소리다. 난 총을 통해 그것을 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총이 없다.

어쩌면, 창고 구석에 있을지도 모른다.


"장난감이라.." 이걸 찾기 위해 3시간을 허비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한낱 장난감 따위론 토끼조차 죽일 수 없다. 그럼에도 총은 총이다. 난 하등 쓸모없는 어린이의 유흥 거리를 주머니에 넣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1층에서 J를 보는 것 같다. 그녀는 소파에 누워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2층의 방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K는? 오늘도 일찍 나갔어?"

"응. 쪽지에 늦게 올 거라고 쓰여 있더라고."

"그래. 알았어."

난 그녀의 말을 가볍게 흘려듣고는 냉장고로 향했다. 장난감 총을 그녀에게 쏜다고 죽진 않을 것이다. 무언가 다른 도구가 있어야 한다. 꿈에 나왔으니, 그녀도 괴물이 될 거다. 감염자가 될 거다. 명분이 없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엔 방법이 없다. 냉동실을 열자, 며칠 전에 먹다 남은 음식들이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미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 그렇게 우리의 과거를 처분했다.

냉장실에서 꺼낸 약간의 재료들로 간단한 요리를 했다. J와도 나누었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은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라 보기 힘들만큼 핼쑥해졌다.

그녀는 세 입 정도 먹고 방으로 돌아갔다. 배가 고프지 않다며 말이다. 다른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다니.

설거지를 하며, 식칼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은 뭔가 꺼려진다. 푸른빛의 혼돈이 나를 감쌀 것만 같다. 식칼의 은빛은 인상 깊었지만, 다시금 눈에 들어온 건 식칼이 아니었다. 식칼은 내 어깨를 비추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커진 어깨, J가 두른 붕대 때문이다. 손의 물기를 털어내고, 붕대를 약간 풀어보았다. 늘려보니, 생각보다 탄탄하다. 어지간하면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

이거면 충분하다.

꿈은 나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고

그녀는 스스로 나에게 방법을 가져다주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하늘은 약간 붉은 기가 감돌았다. 창밖을 보니, 어느 때보다 몽환적인 붉은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확실히, K는 오늘 오지 않는다.


...


K가 없는 지금을 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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