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예지
내 몸은 가벼웠다. 의지를 가득 안고 깨어난 난,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방을 나섰다. 이전엔 불확실한 상태로 공격을 피하기만 하다 반격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오늘은 그것이 싸움의 흐름을 잡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간다면, 소리가 날 것이다. 나는 안다. 소리는 괴물을 부른다는 걸. 그리하여 손잡이를 통해 미끄러져 내려간 난 뒤꿈치를 들고 괴물이 안주한 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무 바닥이 눌리며 약간의 소리를 냈지만, 의외로 괴물은 반응하지 않았다. 예지와는 약간 다르다.
방의 문을 조심스레 열자, J가 먼저 보였다. 그녀의 얼굴엔 눈물이 가득했다.
"D.. M이.. M이..." 그녀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진실을 마주한 것이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난 M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전과 같이 몸이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순 없다.
난 파이프를 들었다. 파이프는 하늘로 올라갔고, 내 체중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끌었던 모양이다.
"으아아아아악!!!" 그것의 끈적한 침은 내 얼굴로 날아왔고, 난 벽으로 날아갔다.
"크윽.." 뼈가 으스러졌다. 부러진 뼈는 팔의 근육을 찌르기 시작했고, 난 그 팔을 더 움직일 수 없게되었다. 하지만, 파괴된 건 왼팔일 뿐이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고통보다 중요한 게 있다.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가볍게 삐그덕거리는 소리의 뒤로 묵직한 무언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이어진다. 난 3층으로 도망쳤고, 창고로 나아갔다. 그것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
지금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은 미닫이문과 충돌했다. 빠른 속력은 큰 힘을 만들 뿐이다.
그런데, 괴성의 뒤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이어졌다.
드르륵..
"으으으...
오..애....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
목소리에서마저 분노가 느껴지는 이 괴물은 날 잡고 구석으로 던졌다. 기시감은 내 몸을 이끌었고, 아까와 같은 상처는 남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이 점점 커진다. 그것은 점점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괴물은 날 잡고 소리 질렀고, 내 왼팔을 뜯기 시작했다.
이미 감각 없는 팔은 뜯어도 의미 없다.
우리 둘을 덮기 시작한 선홍빛 액체의 뒤엔, 노란색의 빛바랜 창문 빛이 비추고 있었다. 창문, 이건 기회다. "이젠 고칠 필요도 없지!!" 난 외쳤다.
노란색의 창문은 아름다운 파편이 되었고, 그 파편들은 창문을 고치던 자의 눈에 자리매김했다. 더 이상 괴물은 눈을 뜰 수 없었다. 그것은 눈을 잡고 소리 질렀고, 난 빈틈을 노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젠 청각에 의존하기 시작한 저 존재에게 공격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이윽고 난 다시 2층으로 도주했다. 2층으로 내려가자 주저앉은 J가 보였다. 그녀를 내버려둔다면, 그녀는 다칠 게 분명했다.
"빨리 도망쳐. 1층이든 3층이든, 이곳은 위험하다고!" 난 다급히 외쳤다.
"..넌 왜 M을 신경 쓰지 않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저건 M이 아니야!! 저건.." 내 말은 추격자에 의해 끊어지고 말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주먹이 날아왔다. 몸은 또다시 예감에 이끌렸고, 예지는 날 그 방으로 인도했다.
T의 방. 그의 방엔 커튼이 있다. 빛이 없다면, 조용하게 움직이는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굳게 닫힌 문을, 난 거세게 발로 찼다.
쾅!
쾅!!
콰직!!!
문은 부서졌고, 눈 없는 괴물과 난 그 방에서 함께였다.
"아으으.." 날 찾으려는 행세였다. 눈 없는 괴물은 소리와 희미하게 보이는 그림자로 날 찾아야 하겠지만, 둘 다 없는 이곳에선 장님일 뿐이다.
지금이 기회다.
이것이,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행동이니, 난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은 공중으로 떠오르고,
그것의 머리로 향한다.
"아아아아아아!!" 이젠 익숙한 비명이다. 난 다시 한번 바람을 가르며 파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괴물은 내 의지를, 내 손의 파이프를 집었고, 철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파이프가 찢어져 버렸다. 잠시 하얘진 내 머릿속을 알아챈 괴물은 몸을 날렸지만, 나는 익숙한 듯 피했다. 마치 수백 번을 연습한 듯 말이다.
뒤를 도니, J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분명 고칠 방법이 있을거라고!!!! 제발 죽이지 말아줘..!!"
괴물은 나에게로 날아왔다. 내 뒤틀린 왼손은 이불을 집었다. 그리고, 하늘로 던졌다.
이불에 감싸진 괴물은 움직이지 못했고,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안돼"
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안돼..!"
찢어진 파이프는 날카롭다.
"안돼..!!!"
사람 목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안돼!!!!!!!!!!!!!!!!!!!!!!!!!!!!!!!!!!!!!!!!!!!!!!!!!!!!"
...
난 파이프를 뽑았다. 내 몸은 너무나 끈적거렸고, 찝찝했다.
괴물을 잡고, 난 문을 나왔다.
J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
그녀는 손톱으로 내 다리를 긁기 시작했다.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왜...? 살릴 수 있었잖아...왜?!?!?.... 고칠 방법이 있었을 거야, 돌릴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J."
과거는 돌아볼 수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랬잖아."
당신들이 알려준 말이잖아.
"기억 안 나? J?"
...
"아..."
"아하하......"
"하하하하핳하하ㅏ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ㅏ!!"
"... D."
"왜 그러시죠? 불만이라도 있으신가요? K?"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지?"
"뭘.. 말씀하시는 거죠?"
"손에 들린 그 사람은 신경도 안 쓰나?"
...
"이게 사람으로, 인간으로 보이십니까?"
"적어도 사람이었던걸 죽였다면 죄책감은 들 거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무감정할 수 있는 거지?! 대답해 봐라!!"
"당신들이 그랬어.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며, 내가 부정했던 과거를 이해하고, 현실을 살라고 조언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뭐? 죄책감?
우린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할 뿐이야. 사라진 사람들을 추모해 봤자 돌아오지 않는다고, 저물어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고, 부서져 버린 유리는 다시 붙지 않는다고!!
대답해 봐!! 너희 둘 다 이 말에 답해보라고!! 이게 틀린 말이야? 아니잖아!!"
"...자네는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
정상이 아니라고?
"난 지극히 정상이야 K. 오늘도 변함없이, '정상'."
"자신이 죽인 사람보고 돌아오지 않는다니, 난 더 이상 자네를 정상으로 보기 힘들군. M은 나한테 넘기게.. 너 빼고 우리끼리 추모를 진행하겠네."
"그러시죠. '리더'."
K는 J와 괴물을 같이 들고 나갔고, 난 끈적이는 몸을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K는 골칫거리다. 그는 강하고 믿음직스러웠으며,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사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 싸우게 된다면.. 분명 위험할 것이다.
다음 날이 되었고, K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비웠다.
J는 더 이상 부엌에 나오지 않았다. 집은 오늘따라 한층 더 칙칙해 보였다.
배고팠던 난 스파게티를 해 먹었다. 그닥 맛은 없었다.
이번 일로 더욱 확실해졌다. '예지는 현실이 된다.'
꿈에서 본건 사실이 되고, 실제로 이루어진다.
다음이 J가 되든, K가 되든, 난 그게 이루어질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너무 슬퍼하고 있어.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난 확신에 차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