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적령기를 맞이한 (혹은 지나친) 싱글들에게 새해 덕담으로 수없이 던져지는 말.
"올해는 꼭 좋은 인연 만나서 결혼하렴"
작년만 해도 왜 시집을 안가 라는 말을 들으면
오라는데가 없는데 어디로 가냐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본디 '새해'라는 것의 특성상
지난해의 스스로의 못남을 자책하며
후아, 올해는 좀 잘 살 수 있으려나,
올해의 나 화이팅. 을 다짐하며
지난해보단 덜 불행하고
훨씬 더 많이 행복하기를 빌다보면
마음이 좀 연약해지고
다소 슬퍼지곤 한다.
불과 며칠 전, 엄마와 소고기를 구워서 술을 마셨다.
(왜 과년한 싱글 딸과 엄마가 새해 벽두부터 정좋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았는가.)
기승전 결혼이 된지 오래이기에
누구네 집 딸은 소개팅한지 3개월 만에 날을 잡았다더라.
너도 애를 써봐.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 같은 잔잔한 어택에는
"와아, 좋겠다-
3개월 만에 결혼하고 싶어질 만큼 너무너무 좋아지는 거,
너무 부럽다, "
라며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며 잘 넘기고 있던 중이었다.
날리는 잽을 요리조리 피하는 내가 얄미웠던지,
나조차도 아파서 잘 들여다보지 않던 과거의 상처까지 헤집으며
어퍼컷을 날렸다.
"내가 보면 항상 네가 문제야.
니까짓게 뭐라고 자존심만 세서는.
잘난 거라곤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그때도 그래-"
무려 딸이 결혼을 하려다가 그만둔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그 사소한 말싸움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철없는 엄마이고,
나는 그 피를 이어받은 못된 딸이다.
그리고 우리는 술이 과했다.
엄마답지 못한 공격에
딸답지 못한 방어로 맞섰다.
"나는 좋은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엄마아빠는 좋은 가정이 뭔지 보여주지도 못했으면서,
그 어려운 걸 왜 나한테 강요해?
내가 뭘 보고 배웠다고?"
자식된 도리로 하면 안됐을
팩트폭력 시전-,
엄마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나는 너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너는 왜이렇게 뾰족하게 남에게 상처주는 사람으로 컸냐고 말했다.
- 엄마는 나한테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무심하게 상처주면서
딸이 한번 파드득 떨면서 받아치면 그렇게 아파?
안타깝게도
새해벽두의 정좋은 모녀간의 술자리는
맛있는 안주와 좋은 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엉망진창으로 되며 끝나버렸다.
다다음날 출장이 계획되어있던 내가 먼저
기차에서
엄마 미안해, 나도 사랑이 너무 어려워,
다녀올게요
라고 카톡을 보내고
엄마도
나도 미안하다, 나도 사랑이 아직 어려운데
자식들만은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래서야.
고 대답해서 출장간 곳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둘만의 술자리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마무리 됐다.
하지만 한번 뱉은 말이 베고 간 자리는 여전히 쓰리다.
정말로 결혼은
-잘난 것도 없으니까 나 좋다는 사람있으면 그냥 가야하는,
그런 건지 되묻고 싶다.
연애대상으로는 거절했을 법한 누군가를
결혼대상으로 적합하다는 이유로 만나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아니 애초에,
그 결혼감으로 적당하는게 대체 기준이 뭐라는거야.
그 결혼감의 바운더리 안에 내가 들어가지 못해서인가.
정말 열받아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