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신경 쓰이잖아.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나씩 티 안 나게 사라지던 티스푼이 몇 개씩 사라지기도 했다. 아끼던 건데, 누굴까. 행여나 바닥에 떨어졌을까, 소파 주변을 꼼꼼히 보았다. 싱크대를 보고 또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티스푼을 쓰는 건 떠먹는 케이크와 파르페, 아이스크림뿐인데.
오전에 자주 찾아오던 정민시, 그녀가 이번 주엔 오지 않았다. 설마,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난번 눈을 마주쳤을 때 반짝이던 무언가가 기억났다. 티스푼을 탐내던 말도, 유난히 오래 바라봤던 날도 떠올랐다. 나는 그녀가 왠지 의심스러웠다. 주머니에서 빛나던 게 티스푼일 수 있으니까.
마침, 그녀가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관리했다. 그녀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아.. 이러면 내가 관찰할 수 없잖아.’
그녀에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네고, 나는 곧장 카운터 위에 거울을 돌려놓았다. 그녀가 의식한 듯 카운터를 향해 힐끗거리더니,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녀가 입고 온 얇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한 번 더 고개를 들어 시선이 밖으로 향했다가 눈이 마주쳤다.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다시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이어폰을 꽂았다. 마우스를 클릭하며 눈동자의 움직임을 살폈다. 글이라도 읽는 듯했다.
유독 그녀를 신경 썼다. 하루는 주말이 되어 산책하고 온 듯 그녀의 가족이 찾아왔다.
“아메리카노 두 잔에 아이스티 한 잔, 떠먹는 케이크는 딸기 맛으로 주세요.” 그녀는 아이와 남편에게 케이크를 권하며 맛있다고 했다. 티스푼 세 개, 기억하고 있겠다며 속으로 되뇌는 동시에 다음 손님이 들어왔다. 화장실 이용부터 하겠다고 하여 안내하고 돌아서니, 이번엔 강아지 산책을 마친 50대 여성이 픽업 창을 통해 주문했다.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제조하고, 신경은 그녀 테이블에 향했다. 뭐가 좋은지 그녀의 가족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티스푼은 그대로였다.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낯설도록,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탈했다. 그녀와의 적당한 거리는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수아가 연락하는 날이면 온통 아이 이야기, 맘 카페도 아이 이야기 위주로만 찾아본다고 했다. 수아에게도 거리감이 들고, 거의 매일 같이 찾아오던 정민시 그녀도 이제는 드문드문 찾아오는 게 못내 서운하고 신경 쓰였다. 어쩌다 찾아오는 날에는 괜히 시선이 한 번 더 갔다. 그러나 건조한 인사와 함께 문밖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은, 내 공허함만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카페 안 분위기는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티스푼의 개수는 계속 모자라고, 바퀴벌레도 종종 한 마리씩 나타나 내 속을 뒤집었다.
손님은 없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곳곳에 덮어놓은 책들은 나답지 않았다. 그러나 귀찮았다. 치우지 않았다. CCTV를 돌려보며 티스푼의 행방을 찾으려 했다. 정민시 그녀는 왜 그렇게 재킷에 손을 넣은 채로 앉아있었을까, 왜 저렇게 힐끗거릴까. 그때였다. 그녀가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 마우스로 향할 때, 주머니에서 잠깐 반짝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가 티스푼을 훔쳤을 거라고 판단했다. 괘씸하다고 해야 할까, 그녀가 무엇이 아쉬워 티스푼을 훔칠까.
다음날, 그녀가 찾아왔으나 나는 웃지 않았다.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 느꼈는지 눈치를 보듯 자리로 갔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떠났다.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실망스러웠다. 그녀가 뻔뻔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커피 머신에 화풀이하듯 머그잔 몇 개를 다시 들었다 놓으며 정리했다. 째랑, 째랑. 소리에 맞춰 눈썹과 입은 정리가 안된 채 어수선했다.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로 마음을 달랬다. 스팀 피처는 싱크대에 퍽, 마음만큼 더러워졌다.
가을은 여름처럼 후덥지근하고, 마음은 여름처럼 끈적거렸다. 장사는 쉽지 않았다. 들쑥날쑥한 손님과 진상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두피가 따끔하도록 올라오는 모난 새치처럼, 마음은 모난 세포로 풍성해지는 것 같았다. 가을을 타는 걸까, 순식간에 혼자가 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갑자기 허무한 기분, 이 공허함을 누굴 탓할까. 차라리 정민시 그녀에게 티스푼을 내놓으라고 따질 걸 그랬나? 엄마들의 방문도 반갑지 않았다. 서비스 하나 내어 주면, 다음날도 원했다. 능청스러운 표정과 말투에 얼음을 던져버리는 상상만 할 뿐, 입에 넣어 씹어댈 뿐이었다.
며칠 후, 정민시 그녀가 더 밝은 표정으로 내 눈을 보며 어설프게 목소리를 키웠다.
“안녕하세요~~ 떠먹는 케이크 초코맛이랑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왜, 또 티스푼 가져가게?’
벼른 듯 주문한 메뉴들과 함께 티스푼을 건넸다. 그녀는 눈치 보듯 내 얼굴을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말을 아꼈다. 그래, 눈치가 있으면 말을 아껴야지. 그녀는 반 이상 남긴 케이크와 커피를 두고 더 이상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만 쳐다보았다. CCTV로 보는 그녀는 입에 무언가 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무언가에 집중한 듯 손은 빨랐다. 힐끗거리는 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티스푼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녀가 머물고 가는 시간은 점점 줄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걸음은 우리 카페로 향하는 일도 줄었다. 찔리는 게 있는 걸까?
‘허, 도둑이 제 발 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