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무료 서비스 이벤트는 종료했다. 어찌나 다행인지 눈에 띄던 바퀴벌레도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방역 업체를 믿으면 됐었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그래도 매달 정기적으로 관리받기로 했다.
아이의 등원을 마치고 노트북 들고 찾아온 정민시, 그녀는 뒤늦게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지 물어왔다.
“당연하죠~ 매일 만들어요~ 종류도 다양하고요. 체력이 빠져서 몇 개 못 만들지만요. 하하”
그녀는 이제야 맛본다며 주문하고, 나는 커피와 함께 떠먹는 케이크와 티스푼을 건넸다.
“어? 이 티스푼 혹시 직구하신 거예요?! 예전에 여행 갔다가 보고 못 사 와서 아쉬웠는데~!”
“맞아요~! 아시는구나~!!”
그녀가 티스푼을 알아봤다. 내 취향을 존중받는 느낌에 실실 웃어댔다.
한 시간쯤 흐르고 어느 노부부가 찾아왔다. 커피 한 잔으로 나눠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충분히 가능하지만, 호의가 권리가 되는 순간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으니 잠시 고민했다.
“한 번은 해드릴게요. 매번은 안 됩니다~!”
“물 먼저 주세요. 가위도 좀 주고.” 할아버지는 장바구니를 열더니 한약이 잔뜩 담긴 비닐을 풀어헤치며 말씀하셨다. 물과 가위를 건넸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며 잔을 꺼내는 와중에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셨다.
“아이고, 이 양반아! 이 늙은 영감탱이 어디다 써먹어!!!”
마침 나가려던 정민시, 그녀가 잽싸게 냅킨을 가져다가 노부부를 대신해 닦아냈다. 할머니 말씀이 한약 파우치 몸통을 들고 잘라야 했는데, 모서리를 잡고 자르셨단다. 카운터를 통해 상체를 숙여 바닥을 봤다. 파우치가 떨어지며 물 잔을 건드렸는지 바닥은 온통 물바다였다. 할머니의 무한 잔소리에 나는 급하게 대걸레를 가져와 정리하고, 정민시 그녀는 쟁반을 픽업 반납대에 올려두고 떠났다. 정신이 없었다.
며칠 만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이번엔 다른 종류로 떠먹는 케이크를 주문했다. 마음에 들었는지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흔들며 커피와 함께 즐겼다. 나도 모르게 힐끗 보게 되는 그녀는 티스푼을 보고 또 바라봤다. 미소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적당히 만족한 듯 티스푼을 내려놓고 이어폰을 꽂았다. 나야말로 얼마 만에 찾는 안정감인지, 나도 잠시 2층으로 향하며 요거트를 떠먹었다.
“띠링”
손님이 오셨는지 문소리가 들려왔다. 1층으로 향하니 손님은 없고, 그녀도 없었다. 픽업 반납대에 먹다 만 커피와 케이크가 있는 걸로 보아 급하게 나간 듯했다.
정리하고 2층으로 올라가 책을 들고 내려왔다. 한 장 두 장 넘기며 읽는 와중에 무언가 스치듯 촉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싶은 마음은 다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방심하지 않겠다는 듯 손님이 없는 사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겁먹으라고. 아니, 내가 겁먹었을지도.
그날 밤, 마감 정리를 하며 보관함에 있어야 할 티스푼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이상하다. 왜 개수가 모자라지?’
드문드문 방문하던 정민시, 그녀는 노트북을 바라보면서도 누군가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문자를 주고받는 모습이 한 번씩 보였다. 적절한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던 지라 쉽게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나도 참, 왜 훔쳐봐.’
내가 그녀를 보듯이, 손님 중에 누군가도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뜨끔했다. 커플 손님을 보자니 손발도 모자라 얼굴마저 오그라들고, 부부 손님을 보자니 등산복을 입은 다정한 부부는 진짜 부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결국 내 시야엔 그녀만 보였다. 그녀가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걸 꺼내다가 고개를 들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당황한 듯 멋쩍게 웃어 보였다.
정리하고 나가려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아이가 좀 커 보이던데, 일찍 결혼하셨나 봐요~~”
“아, 저요? 아닌데~ 저 서른둘인가 셋인가에 낳았어요.”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와~ 동안이시구나~ 가만 보면 꼭 대학생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는 내 말에 수줍은 듯 웃어 보이며 인사하고 떠났다. 사실 오버는 아니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였는데 비슷한 또래라니, 내가 일찍 결혼했으면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거란 생각에 또다시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가 하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수아도 소개팅 후 결혼까지 1년도 안 걸렸다. 속도감이 낯설어서일까, 수아의 계획이 욕심인 걸 알아서일까. 절친 수아의 결혼 과정과 생활은 여전히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았다.
몇 차례 손님 테이블이 바뀌고, 마감 시간이 되어 정리했다.
‘어라? 왜 또 티스푼이 모자라?’
눈썹이 찌푸려지고 고개를 갸우뚱해 봐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픽업 창을 두드렸다.
“어쩌죠? 지금 마감했어요~”
다급하게 찾은 듯 커피가 아닌 케이크를 원했다.
“컵케이크 맛별로 하나씩 주세요! 오늘이 기념일인데 버스 내려서 도착하니까 생각난 거 있죠?” 숨을 헐떡이며 전하는 모습에 몸이 앞섰다. 나까지 정신없어지는 그의 숨소리는 거칠고, 나는 빠르게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곱게 포장하며 마감이라고 하나를 더 얹어서 그에게 건넸다. 돌아서서 괜히 한숨 돌리듯 내게도 잠시 쉼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