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음산한 기운의 그녀들

벗어나고 싶어

by 민시

8층을 거쳐 7층으로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문이 열린 순간 801호 그녀가 존재감을 물씬 풍기며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나를 위아래로 쏘아보는 게 느껴졌다. 얼굴의 솜털마저 바짝 세워지는 것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나는 바쁜 심장과 달리 눈동자조차 돌릴 수 없을 만큼 경직된 듯 그대로 굳었다.

‘이러니, 내가 무슨 수로 대화를 시도해. 이 좁은 공간에서 안 보인다고 생각하나.’


그녀와 하루 걸러 하루, 마주치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다. 여전히도 그녀는 팔짱을 끼며 나를 위아래로 쏘아보는 것 같았다. 평소의 층간 소음과 아이를 생각하면 화를 분수처럼 토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기세에 꺾인 듯 오히려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싫어도 이웃, 불편해도 이웃, 끝까지 인사하고 표정을 관리하리라 마음먹었다. 아니, 사실은 눈만 마주쳐도 언제고 잡아먹힐 것 같이 두렵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상관없었다. 다만,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녀의 감정 섞인 행동으로 인한 층간 소음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어느 날은 항상 집에서 들리던 목청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러는 듯한, 그녀의 어깨가 내 어깨를 툭 치고 내리는 순간도 찾아왔다. 손에 쥐고 있던 커피는 테이크아웃 잔 안에서, 나는 내 마음 안에서. 마구 요동쳤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겨우 안정된 듯 잔물결을 일으키며 커피도 심장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녀의 불만은 내 불만도 키웠다.


그녀는 올백으로 머리카락을 바짝 끌어올려 묶고 다녔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날이면 으스스한 분위기가 나를 숨조차 쉬지 못하게, 공기까지 빼앗는 느낌이었다. 평소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쏘아보는 눈빛이 두려워서 할 말을 삼켰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무엇이 두려워서 할 말을 못 하고 겉으로 드러내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 울리지 말라고 따지러 내려올 땐 언제고, 그땐 무슨 용기였을까?


그녀를 만날 때마다 정전기라도 만난 듯 머리털부터 닭살까지 마중 나왔다. 마치 그녀의 혼이라도 빠져나와 내 머리카락을 쥐어 잡는 느낌이랄까? 엘리베이터를 벗어나야만 숨이 쉬어졌다. 말없이 쏘아보는 무언의 폭력은 뜨겁고 매웠다. 정신을 못 차리며 퉁퉁 부은 면발처럼, 힘이 없어 몸도 마음도 처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웃 간에 인사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어느 날, 8층을 거쳐 7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 어떤 남자아이가 씩씩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휴, 다행이다.’

“응 안녕~ 8층에 살아?”

“네~ 802호에 살아요. 제 이름은 최정훈이고요”

“아~ 정훈이 이름도 멋있네~”

“이모 이사 왔어요?”

“응~ 아직 몇 달 안 됐어~”

정훈이는 또래보다 큰 키의 남자아이, 강단이 있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처럼 보였다.


며칠 후, 정훈이가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정훈 엄마는 깡마른 몸이지만 연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801호 그녀와 못지않게 존재감이 남달랐다. 시력이 안 좋은 건지, 단순 멋인지 모르게 파란빛이 도는 렌즈가 인상을 더 세 보이게 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 정훈이가 나에게 이모라 부르며 웃는 것조차 그녀는 경계하는 듯했다. 입은 웃고 있으면서도 눈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절대 보통이 아닐 것 같은 예감에 말도 붙이지 않았다. 거부 반응은 자동으로 거리 두기를 원했다.

‘801호나 2호나 비슷한 듯 닮았어.’

엘리베이터 벽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곧 이사한다며 인테리어 공사를 알리는 803호의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801호 그녀와 802호 정훈 엄마는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서로 존댓말 하는 걸 보니 이제야 인사를 나눈 것 같았다. 801호 그녀는 내게 보이던 눈빛이 아니었다. 상냥하고 친절한 눈빛과 말투로 802호 정훈 엄마를 대했다. 나는 그녀를 더욱 경계했고, 그녀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언제부턴가 802호 정훈 엄마도 나를 위아래로 쏘아보는 게, 두 사람은 꼭 90년대 비행 청소년들을 보는 것 같았다.


나의 촉은 절대 가까이하지 않는 게 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그녀들의 쏘아보는 시선은 거의 매일 감당해야만 했다.

‘차라리 말이라도 걸어보던가. ’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 이웃의 따가운 시선, 나이도 많은 어른들의 행위가 낯설고 또 낯설기만 했다.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지하 1층 주차장을 향해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내리려는 찰나였다. 바로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쪼그려 앉아 있던 802호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오른손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왼손은 이마를 짚으며 심각한 표정과 말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그녀는 급하게 다리를 오므리고 일어났다. 무슨 통화를 하든 상관없었다. 단지, 어두운 조명 아래 그녀의 자세와 파란 렌즈의 눈빛은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강박처럼 느껴졌다.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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