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우리의 것이니까

by 혜윤

10개월을 일 했던 치과에서 다시 무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꽤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비집고 나오던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언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죄지은 인간들은 다 잘 살게 하면서 나만 이딴 식으로 살게 해.'

그때의 나는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잘 사는 사람만 보면 자격지심이 차올라서 그들을 아무 이유 없이 미워하기도 했다. 아니, 사실 아무 이유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못 살고 있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을 테다.

내 마음 밭의 분주함과 우울은 그런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치과 데스크로 취직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내게 성실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성실한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다.


매일 일기를 쓰던 다이어리에 어떻게 하면 더 잘 죽을 수 있을지를 끄적이면서 웃기게도 난 내가 믿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일을 빌었다.

어쩌면 난 하나님이 너무 미움과 동시에 나를 이런 마음밭에서 구원할 수 있는 건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포항에서 오랫동안 다녔던 정신과를 다음으로, 난 인천에서 꽤 오랫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됐다.

예전처럼 똑같이 2주에 한 번씩 약을 먹고 용량을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에는 죄인처럼 그 진료실 의자에 앉아 목소리를 삼키며 눈물을 뚝뚝 흘렸고,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흐릿해져 보일 만큼 눈에 눈물을 가득 채워둘 때도 있었다.


약을 먹음으로 내가 나아지는지 나는 알 수 없었고, 약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나 심했다.


그러나 사람이 의지만 있다면 해낼 수 없는 것은 없었다.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고자 했다. 나를 잘 보듬고, 아껴주려 노력했다.

그 정신과를 다닌 지 1년이 좀 넘어서였나, 난 진료실 의자에 앉아 의사 선생님을 아주 선명하게 보며 말했다.

많은 것들이 괜찮아졌고, 꽤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그래서 조금 행복해졌다고 말했던 것 같다.


꽤 길고 큰 책상에서 모니터 두 대를 응시하며 빠른 타자로 나를 기록하던 의사 선생님은 내게 '혜윤 님께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게 처음이라는 걸 알고 계신가요?'라고 말했다.

나는 끄덕였다. 당연하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 것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으니까.


사실 나아짐의 과정이란 너무나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에 나아지는 아픔은 없다. 없었던 듯이 싹 사라지는 상처도 없다. 난 그걸 알고 있었다.

약의 용량을 줄였을 때, 늘렸을 때, 나는 몇 번이고 자책하고 무너지고

또 가끔은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나아짐의 과정 속에서 나는 정말 많이 아팠다.


나아졌다고 하는데 왜 그 속에서 아파했는지 독자들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음.. 어떤 것에 비하면 이해하기 쉽게 적을 수 있을까?

도저히 그 감정을 설명할 만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간에, 난 내가 가진 그 지저분한 감정들에게서 벗어나려고 늘 노력했고 발버둥을 쳤다.


치과 데스크로 입사를 해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물론, 그곳에서도 24살이던 나는 여전히 막내였다.

23살, 어리기만 했던 막내와 같았느냐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었다.

성실함이 전부인 막내였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불평하지 않고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3개월 뒤, 우연의 계기로

아니, 우연을 가장한 내 안에 내가 원하던 마음으로 나는 다시 진료실로 복귀하게 된다.


다시금 아주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죄지은 인간들은 잘만 살게 한다던 내게 천국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했던 그 언니의 답장 한 통을 새기고, 성실한 자의 성실을 믿으며 다시 응답받은 길로 나아가게 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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