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다행스럽게도 나는 성실하게 잘 해내는 막내가 되었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막내에서 조금 업그레이드되어, 아니다.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간절한 내가 되어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서울에 오길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한강이었다.
그것이 멋져 보였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랑 같았고, 허락하신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나는 그 한강다리를 보면 왜 그렇게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소설책의 주인공은 한강에서 투신을 하려고 생각하다 책의 끝에서 다리는 뛰어드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에게 한강은 그런 곳이었다.
몇 번이고 위로를 받았는데, 그 위로가 갑자기 증오가 되었고 그대로 나는 그 물속에 파묻혀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끝끝내 나는 다리는 건너는 곳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긴 했지만 말이다.
다시 치과 진료실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 보자면 나는 10개월을 일 한 뒤 5개월 정도 휴직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온전한 2년 차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남들보다 훨씬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게으름이 습관이 되지 않게 나는 부단히 노력했다.
5화까지 오면서 내가 지겹게 말한 그 성실을 열심히 지키려고 했다.
내가 진료실에 들어갔던 이유 중 하나는 '나도 할 줄 아는 것'이었다.
데스크에 앉아있다 보면 진료실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는데, 진료실 선생님들이 하는 일을 보며 '아, 나도 저거 할 줄 아는데',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진료실 팀장님과 꽤 가깝게 지내면서 내게 진료실에 들어오면 본인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열심히 가르쳐줄 수 있다고 했다.
그 팀장님은 진료적으로도 치과 밖에서도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내가 모르는 진료의 술식들을 보고서에 적어오라고 시켰고, 내가 익숙하지 못했던 일을 옆에서 어시스트해 주며 정말 많이 지켜봐 주었다.
일주일에 2~3번씩 보고서를 쓸 때마다, 퇴근하고 쉬고 싶은데 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게 귀찮기도 했다.
1년이 거의 다다를 때쯤에 팀장님은 내게 '드디어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았네. 잘했어.'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팀장님은 내게 보고서를 써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성취 중에 아주 큰 부분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일하는 가운데에서도 수시로 정신과를 오갔고, 열심히 약을 먹으며 상담을 받았다.
내가 내 우울이 나아질 수 있냐 물었던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내게 기록처럼 우울이 남아있을 거라고 말했다.
기록처럼 남아있는 우울..
예전에 그 말을 들었으면 바로 한강에서 투신하는 나를 상상했을 것이다.
왜인지 그날의 나는 그 말을 수긍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 기록처럼 남아있는 우울, 잘 이겨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 단계씩 나아지고 있는 내가 있으니까, 거울에 비친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아주 아끼는 사람에게 지겹도록 우울한 내 감정에 대해 물었다.
너는 내 감정이 괜찮느냐고, 내 곁에 머물게 하기에 내가 너무 힘들지 않느냐 물었다.
그 사람은 내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의 우울도 받아들이자고, 수긍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꼭 힘겹게 이겨내지 않아도 나 잘 살 수 있구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