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라 일!

by 혜윤


1년 차 때 처음 들어간 곳은 교정전문치과였다.

총 두 군데의 치과에 면접을 봤지만 좀 더 부담이 적은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아빠, 엄마와 함께 포항에서 서울까지 나의 짐을 옮겼고 성인 두 명이 누우면 끝날 것 같은 작은 원룸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온전한 내 방이라는 것이 있지 않아서 (따로 쓰는 방이 있긴 했지만 아주 좁고,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새로운 기분에 설레었다.

밤늦게 마음대로 들어와도 누구 하나 날 눈치 주는 사람 없고, 내가 원하는 라면을 실컷 먹어도 괜찮고, 쉬는 날에는 늦잠을 자도, 어떤 소음에 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마냥 어린 신입이었다.

물론 졸업을 하자마자 입사를 했으니 나는 막내였다.

동기는 없었고, 바로 위 선임은 3년 차였다.

나와 가장 가까운 동료였고 서로의 많은 것들을 공유할 정도로 우리는 가깝게 지냈다.

물론이다. 바로 옆 집에 살았으니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마냥 어리기만 한 신입은 너무 더뎠다.

서울생활에 너무 들떠있었고, 게으르진 않았지만 빠르지도 않았다.

그때 내가 빨랐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집중해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난 정말 한강을 위해, 한강을 찾으러 온 사람인 마냥 그곳을 발이 닳도록 갔다.


스스로의 부족함에, 타인의 시선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일로 인해 난 퇴사를 하게 되었다.

10월이 되었을 때였다.

그 직장에서 내가 딱히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스스로 더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열심히 했느냐고 성실했느냐 물으면 난 당당히 맞다고 대답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아빠의 말이 맞았다.

난 포항을 떠나기에 아프고, 연약하고, 내가 부족했다.

중2 때 모야모야병 수술을 받은 후에 진단받은 우울이 다시 내게 도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우울 중에 그때가 아마 최고점을 찍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난 매일 밤 내가 없는 세상을 꿈꿨다.


다시 '포항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내 선택이었다.

그 길로 내가 다시 포항에 내려가게 된다면 난 그들에게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에 그들이 말하는 내가 맞았고, 내가 당당하게 소리치며 옳다고 믿었던 내가 틀린 거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옳다고 믿었던 내가 결국에 옳지 않았느냐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옳았다고.


감사하게도 난 포항에 내려가지 않고 경기도에 있는 이모집에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매일 밤 천장을 보면 목을 어떻게 매달아야 잘 죽을 수 있을지, 욕조 안에서는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달리는 차를 보며 몸은 내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6개월을 하며 지냈다.


그 시기에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잠을 못 자서, 죽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그래서 일기를 썼다.

나를 목매달게 하는 모든 감정들이 그곳에 적혀있었다.

미끈하게 얼룩진 기름처럼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감정들이 지저분하게도 날 괴롭혔다.

죽고 싶었다면서, 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새벽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아침 9시쯤 일어나 바리스타 강습을 들으러 갔다.

결국에 내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냈을 때, 하나님은 나더러 살아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진료실에 들어가기에는 또 나의 부족함때문에 지긋지긋해질까 봐 두려웠고, 다른 일을 하자니 용기가 없었다. 사실 열정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 아는 치과에서 다른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데스크 업무였다.

그리고 난 우연찮게도 이곳에서 내가 살고 싶은 순간의 기적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우연을 가장한 모든 인연에서부터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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