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말을 듣는 동안엔 잠시 나의 생각을 내려놓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생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논쟁은 좋아하지만 말다툼이 될 것 같으면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한다.
그건 회피가 아니라 충분하다는 뜻이니까.
밥을 빨리 먹는 친구가 있다.
“천천히 좀 먹어.”라고 말하면 그는 잠시 멈췄다가, 늘 그랬듯 어린 시절을 꺼내놓는다.
“우리 집은 형제가 많아서 천천히 먹으면 먹을 게 없었어.”
먹는 것도 생존이었다는 그의 말에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막내였고 항상 오냐오냐하며 자랐다.
그는 생존을 위해 먹었지만 나는 애정 속에서 자라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삶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방식이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지고 싶은 게 별로 없다. 기껏 욕심내서 산 건 몇 만 원짜리 키보드, 만년필 정도.
아, 최근엔 몇십 만 원어치의 생두를 샀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기후에서 자란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좋았다.
비슷한 듯하지만 분명히 다른 향과 맛이 있었다.
나 같은 사람도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견과류, 다크초콜릿, 쓴맛, 신맛, 꽃향기.
여러 가지 맛을 느끼고 구분한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더 능동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이 어색하다. 그런 순간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나 꽉 쪼이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일은 내적 동기나 자기만족이 있어야 즐거웠던 것 같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남이 칭찬하든 말든 그건 큰 상관이 없었다. 물론 충고나 조언도 듣는다. 다만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는다.
이런 내 태도는 직장에서도 드러난다.
누가 무엇을 하자고 하면 나는 늘 “네.”라고 했다.
언뜻 ‘예스맨’ 같지만 실은 마음에 크게 두지 않아서였다.
뭘 해도 일이니까.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쏟는 건 왠지 손해 보는 장사 같았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좋아요.”
“이 부분 조금만 수정하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에요.”
“너무 많이 물어보죠?”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해요. 제가 놓쳤던 부분을 볼 수 있으니까요.”
여긴, 어떤 결정을 내려도 결국은 굴러가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애쓰지 않는 방식으로 이곳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