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벚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3월은 가장 분주한 시기라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다.
신경을 썼던 것 같기도, 너무 무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창문 너머로는 어느새 초록색의 잎사귀가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단풍만큼은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 한쪽을 고쳐 묶었다.
티맵에 ‘주왕산’을 눌렀는데 정정하듯 ‘주왕산국립공원’이 떴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풀리지 않는 작은 의문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길을 따라 가는데 먼발치에서 본 산은 검은 그림자를 덮어쓴 모습이었다.
‘벌써 단풍이 졌을 리는 없는데’, ‘지금이면 아직 절정도 아닐 텐데’
불안이 엄습했다. 나는 또다시 놓쳐버린 걸까.
자세히 보니 그건 올해 났었던 큰 산불로 인해 회색으로 식어버린 능선이었다.
기적처럼 제 빛을 간직한 몇 그루의 나무가 불길을 건너온 생존자처럼 서 있었다.
자동차로 한참을 가도 여전히 같은 풍경에 마음이 아팠다.
뉴스에서 본모습보다 더 처참했다.
‘혹시 산불이 주왕산까지 번진 건 아닐까’
걱정이 길게 자라났다.
“소나무는 산 채로도 잘 타.” 언젠가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산 채’, ‘탄다’ 그 단어들의 날 것 같은 감정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길이 주왕산까지는 닿지 못한 듯 그곳의 단풍은 살아 있었다.
폭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늦게 시작한 산행이라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이미 어떤 빛을 담아 돌아가는 사람들.
나는 이제 막 그 빛을 찾아 나서는 길이었다.
해가 지지 않기를
내려오는 시간까지 그 따스한 빛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걸었다.
단풍은 생각보다 더 많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노랑이나 빨강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색들.
겹겹이 쌓여 서로 스며들고 번지는 빛들.
사람들은 그 복잡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울긋불긋’이라는 단어를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동안 ‘힘들다’, ‘아프다’ 이 두 말로 나를 설명하며 살아왔다.
아니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보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아픔 속에서도 다정한 손길 같은 위로를 느꼈고,
힘듦 속에서도 다시 걸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했다.
마치 돌아오는 계절처럼.
당신도 그래요.
수많은 색을 가진 사람.
글로 다 적을 수 없는 빛을 가진 사람.
당신을 단 한 단어로 불러야 한다면 역시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울긋불긋한 사람.
수많은 계절을 품고도 아직 지지 않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