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에 삼킨 문화 충격
핸드폰 가게를 나서자, 제이슨 형이 내 어깨가 살짝 처진 걸 눈치챘는지 웃으며 다가왔다.
“유석아, 우리랑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형은 옆에 있던 일행들과 함께 자기 차를 가리켰다.
호텔로 혼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하루 종일 긴장을 놓지 못해 지쳐 있던 내게 그 제안은 뜻밖의 구원처럼 느껴졌다. 식사까지 함께하고,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한편으론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차가 출발하자 형들끼리 저녁 메뉴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던 중, 제이슨 형이 운전대 너머로 나를 힐끗 보며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미국에 왔으면 이 식당은 한 번 가줘야지. 기대해.”
그 짧은 한마디, 기대해.
그 말이 내 어깨에 남아 있던 긴장을 풀어주었다.
핸드폰 매장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패배감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차가 멈춰 선 곳은 붉은 벽돌의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정면에는 큼지막한 네온사인으로 “Golden Corral”이라는 글씨가 환하게 빛나고, 그 아래에는 미국 국기 색의 줄무늬가 둘러져 있었다. 마치 레고로 지은 듯 투박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외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정장 차림의 노인, 운동복을 입은 가족, 아이에서 노인까지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마치 놀이공원 입장 대기줄 같았다. 우리는 그 긴 줄 뒤에 섰고,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음식 냄새가 진하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진짜 미국식 식사라는 걸 처음 봤다.
내가 알고 있던 식당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초콜릿 분수 주위로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고, 과일과 마시멜로를 꽂은 꼬치를 들고 분수 속에 퐁당퐁당 담갔다. 한쪽에는 스테이크, 햄, 베이컨, 통닭 다리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다른 쪽에는 감자튀김, 치즈 라자냐, 크림 파스타가 기름빛을 반짝이며 대기 중이었다.
음식은 선택이 아니라 욕망의 축제였다.
접시는 작지 않았고, 사람들은 닭고기와 돼지고기, 치즈와 디저트를 한 접시에 함께 담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었다. 나는 샐러드부터 시작하려 했지만, 미국식 샐러드는 샐러드가 아니었다.
풀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신 드레싱과 치즈, 베이컨 크럼블, 크루통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위에 하얀 렌치 드레싱을 흠뻑 부어 마치 산채비빔밥처럼 비벼 먹는 걸 보며, ‘아, 건강식이라는 개념은 여긴 통하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테이크 코너 앞 줄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내 앞에는 나보다 두 배쯤은 커 보이는 사람들이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었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운지 한 사람은 손잡이에 체중을 거의 기대다시피 하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후…하...”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새어 나왔고, 그 소리는 고기 굽는 지글거림과 묘하게 섞여 있었다. 줄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다들 한 발씩 옮겼고, 그 짧은 이동에도 숨을 고르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테이블 하나에 음료 컵이 여섯 개나 놓여 있었다. 콜라, 다이어트 콜라, 아이스티, 레모네이드, 오렌지 주스, 그리고 색만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탄산음료 하나. 그들은 컵을 정해두지 않고 돌아가며 마셨다. 누군가는 스테이크를 씹다가 레모네이드를 들이켰고, 바로 이어서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대화보다 더 컸고, 컵이 비워질 때마다 자연스럽게 다시 채워졌다.
어떤 테이블에서는 접시가 쌓이고 있었다. 다 먹은 접시를 치우지 않고 한쪽으로 밀어두더니, 그 위에 새 접시를 얹었다. 접시 위에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음식들이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접시가 하나 더 올라갈 때마다 탑처럼 흔들렸고, 나는 저게 언제 무너질지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날 나는 미국 생활의 진짜 얼굴을 처음으로 본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며,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마음껏 담을 수 있는 세계.
자유의 미각, 칼로리의 해방.
그건 단순한 외식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형들은 내 표정을 보자마자 알아챘다는 듯 웃었다. 제이슨 형이 고기를 자르다 말고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처음 유학 왔을 때 여기 와서 바로 충격 받았어. 어때, 미국 서던 음식 클래스?”
옆에 있던 형들도 맞장구를 치며 “여기 처음 오면 다 그래”라며 나를 놀렸다.
나는 웃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였는데, 사실은 놀림보다 눈앞의 풍경이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접시 위 음식도, 주변 사람들의 먹는 속도도, 공기 속 냄새까지 전부 과해서 잠시 멍하니 앉아 있게 됐다.
어느 정도 식사를 하고 나서, 형들과 함께 디저트 코너로 향했다.
코너를 도는 순간, 공기가 확 바뀌었다.
단내가 훅 하고 밀려왔고, 코를 찌를 만큼 진한 설탕 냄새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보다 먼저 들어왔다.
눈앞에는 케이크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초콜릿 케이크, 치즈 케이크, 빨간색 아이싱이 두껍게 발린 케이크, 위에 과일을 얹은 케이크,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형광색 젤리가 얹힌 케이크까지.
그 옆에는 브라우니와 쿠키, 푸딩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초콜릿 분수에서는 여전히 갈색 액체가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형들은 아무렇지 않게 접시를 들고 케이크를 하나씩 담았다.
“이건 먹어봐야 돼.”
“저건 좀 달긴 한데 괜찮아.”
나는 이미 배가 가득 찬 상태였는데도, 이상하게 접시 위에 또 뭔가를 올리고 있었다.
맛이 궁금하다기보다는, 여기까지 와서 안 먹고 지나치면 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자리에 돌아와 몇 입 더 먹고 나서야,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를 밀고 일어서는데, 그제야 배가 단단하게 불러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까까지는 그냥 많이 먹었다는 정도였는데, 몸을 세우는 순간 안쪽에서 묵직한 무게가 아래로 쏠렸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르며 서 있었고, 형들은 그 모습을 보고 또 웃었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배가 너무 불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방 안을 빙글빙글 돌며 소화를 시키고, 서서 유튜브를 보았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내일 생각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내가 직접 계약한 집으로 이사 가는 날.
낯설고 막막했던 미국 땅에서 내 공간이 생긴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설렘 덕분에 더부룩한 배도, 지친 몸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