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단절, 상실
사적인 삶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종종 오해를 부른다.
차갑다거나, 숨기는 것이 많다거나, 진실하지 않다는 평가까지 따라붙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타인의 내면을 공개하지 않는 선택을 불성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모든 감정이 설명되어야 하고, 모든 관계가 서사로 정리되어야 안심하는 시대 속에서, 침묵은 가장 불편한 태도가 되었다.
그러나 침묵은 언제나 회피의 결과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겪은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윤리일지도 모른다. 관계가 무너지고, 말이 상처가 되고, 고백이 소비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한 사람은 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사적인 삶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그래서 단절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 도달한 한 가지 형식의 존엄이다.
관계는 언제나 남는다. 그러나 남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관계는 현재형으로 머물고, 어떤 관계는 과거형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어떤 관계는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그 말할 수 없음의 자리에 우리는 흔히 ‘비밀’이나 ‘회피’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사실 그곳에는 상실이 있다. 설명해도 이해되지 않았던 순간들, 말할수록 왜곡되던 감정들, 결국 관계를 지키기 위해 침묵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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