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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서사를 요구하는 사회

설명되지 않은 감정 앞에 머무는 윤리에 대하여

by 구시안

요즘의 고통은 그냥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설명되어야 하고, 이해 가능해야 하며, 무엇보다 이야기처럼 정리되어야 비로소 인정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마주할 때, 그 고통이 사실인지보다 먼저 묻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 질문은 공감처럼 들리지만, 종종 심문에 가깝다.



고통은 원래 서사가 아니다.

시작과 전개, 교훈을 갖춘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대개 불완전한 상태로, 말문이 막힌 채, 시간의 순서조차 흐트러진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한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 앞에서 불편해지고, 이해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자리를 옮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에게 정돈된 이야기를 요구한다.



문제는 이 요구가 무심하게 폭력이 된다는 데 있다.

말 잘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고통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구조화할 수 있는 사람, 이유와 맥락을 조리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만이 ‘믿을 만한 피해자’가 된다. 반대로 말이 끊기고, 기억이 어긋나고, 감정이 뒤엉킨 사람의 고통은 자주 의심받는다. 그 고통은 충분히 설득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된다.



우리는 종종 고통에 교훈을 덧붙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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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51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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