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 생각이 되기까지
사유는 언제나 무언가가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감정, 이미 끝났다고 믿었으나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잔여물 같은 것들. 생각은 대개 안정된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이상 감정을 감정으로만 견딜 수 없을 때, 말 대신 침묵으로 버티던 어떤 순간에서 비로소 고개를 든다.
나는 오랫동안 사유를 선택의 결과라고 믿었다.
생각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생각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유는 의지가 아니라 파열 이후의 반사 작용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이 제자리를 잃었을 때, 사람은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사유의 시작이다.
상실은 사유를 강요한다.
잃어버린 것이 분명한데,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할 수 없을 때. 설명을 요구받을수록 오히려 말이 흐트러지고, 감정은 더 깊이 침잠한다. 상실은 종종 사건이 아니라 상태로 남는다.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채, 단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감각만이 몸에 남는다. 그 감각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은 묻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이 상태는 무엇인가를.
사유는 답을 찾는 행위라기보다, 질문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대개 자신을 소모시킨다. 그러나 “이 감정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고통을 조금 다른 각도로 놓아 보게 만든다. 사유는 고통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옮겨 놓는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감정의 중심을 정확히 건드리는 문장들. 설명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으며, 그저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태도. 랭보의 시가 그러했듯, 감각을 밀어붙여 끝내 언어의 경계에 닿는 방식. 그 문장들 속에서 사유는 사상이 아니라 상태로 존재했다.
사유는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고독하며, 때로는 위험하다. 한 번 시작된 사유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고, 관계의 구조와 언어의 습관, 감정의 도덕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사유는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유의 시작에는 언제나 상실이 있다.
사람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으며, 한때 확실하다고 믿었던 삶의 방향일 수도 있다. 그 상실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 태어날 수 있었던 자리, 이전의 언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지점이다. 그 자리에 질문이 놓이고, 질문은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사유는 사람을 더 나아지게 만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더 정직하게 만든다. 쉽게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위로하지 않으며, 타인의 고통 앞에서 말을 아끼는 태도. 설명되지 않은 감정을 서둘러 이해하려 들지 않는 자세. 사유는 그런 윤리를 몸에 남긴다.
우리는 종종 사유를 성숙함의 증거로 여기지만, 실은 그것은 감당해야 할 몫의 증가에 가깝다.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의심하고, 더 쉽게 타인의 고통에 노출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유가 시작되기 직전에서 멈춘다. 생각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질문을 피하고, 이미 주어진 언어 안에 머문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에는 사유를 피할 수 없다.
상실이 충분히 깊을 때, 침묵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때, 사람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구원할 것이라 믿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고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사유는 그렇게 시작된다. 선택이 아니라, 필연으로.
사유의 시작에는 언제나 외로움이 따른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말할 수 없고, 같은 농담에 웃을 수 없으며, 같은 속도로 세상을 통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이전의 무리에서 한 발 물러난 상태에 가깝다. 그 거리에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에 의해 살아왔는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사유를 통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이전보다 덜 속이고, 덜 단순화하며, 덜 쉽게 판단하게 되었다. 사유는 삶을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삶을 정직하게 무겁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는 태도만이,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다.
사유는 끝이 없다.
한 번 시작되면, 그것은 계속해서 자신을 갱신한다. 오늘의 질문은 내일의 답이 되지 않고, 오늘의 답은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통과하게 된다. 더 느리게,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 더 침묵에 가까운 언어로.
사유의 시작은 종종 상실이다.
그러나 그 상실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결핍이 아니라, 생각이 태어날 수 있었던 자리로 남는다.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았던 그 자리에, 비로소 질문이 놓인다. 그리고 그 질문과 함께,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다른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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